전 세계 15개 영화제에서 25개의 상을 수상한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 이 영화는 1994년대의 서울 대치동의 열네 살 평범한 소녀 ‘은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은희’는 모범생 오빠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부모님의 싸움에 충격을 받고, 선생님께 ‘날라리’로 찍혀 부모님께 잔소리를 듣고, 친구에게는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아픈 일상을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은희에게 집이란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병원보다 더 불편한 곳이다. 그러던 중 한문 학원에 새로 오신 선생님 ‘영지’를 만나게 된다.

영지는 참으로 독특하고 매력 있는 캐릭터다. 영지 선생님은 친구와 싸운 은희를 위로해 주며 우울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 둘을 위해 뜬금없이 ‘잘린 손가락’이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또한 오빠에게 맞는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했던 은희에게 저녁에 조용히 찾아와 맞지 말라는, 그에 맞서 싸우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다. 이후 영화 내에서 처음으로 은희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가족들에게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 <벌새>, 김보라, (주)엔나인필름, 2019

따뜻하고 자유로우며 진중한,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처음 만난 동경의 대상이자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선생님. 아쉽게도 선생님은 영화의 끝까지 은희와 함께하지 못한다. 간발의 차로 은희의 언니가 살아남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선생님은 은희의 곁을 떠나고 만다. 선생님이 사고 직전에 은희에게 보낸 편지는 더욱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이에 은희는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고 답한다. 영화는 선생님이 사고를 당한 성수대교에 은희와 은희의 언니가 찾아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부모님 몰래 늦은 밤 집을 나선 은희의 도전은 그동안 수동적이었던 은희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터뷰에서 김보라 감독이 영지의 말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10대인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 10대 시절을 지나온 무수한 은희에게 보내는 위로. 또 하나는 어른이 된 내가 은희였던 나를 위로하는 것. 위로가 필요한 수많은 은희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은정 수습기자 bbongbbong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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