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을지로 인쇄소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허름한 건물들 가운데 ‘십분의 일’이라는 와인바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밖의 골목 풍경과는 동떨어진 공간이 나타난다. 벽 한 면에는 빔프로젝터로 영화가 나오고 있고, 잔잔한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높은 빌딩들 사이로 인쇄소 골목과 조명, 간판가게가 즐비한 을지로를 보고 있자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을지로에 독특한 감성을 더한 개성있는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을지로는 ‘힙지로’로 다시 태어났다.

힙지로는 새롭고 개성이 강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힙’과 을지로의 합성어로 요즘 을지로가 20~30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며 생긴 별명이다. 십분의 일도 힙지로가 떠오르면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가게 중 한 곳이다. 이런 가게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간판이 없다는 것이다. 십분의 일도 2층에 있는 매장으로 들어갈 때까지 간판이라고는 들어가는 문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이 전부다. 골목 사이를 누비며 어렵게 찾은 가게로 들어갈 때, 손님들은 마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을지로만의 독특함이 젊은 세대를 힙지로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 와인바 ‘십분의 일’의 가게 모습

이 가게의 경영방식도 독특하다. 각자 직업을 가진 10명의 청년들이 공동대표가 되어 협동조합 형식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월급의 10분의 1을 회비로 내고, 이후 생기는 이윤은 N분의 1로 나눈다. 본인이 다니는 직장의 급여에 따라 많이 내기도 하고 적게 내기도 하지만 이들의 지분율은 동등하다. 초기에 수익이 없을 때는 이 회비로 월세나 인테리어 비용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와인바의 이름도 십분의 일이 된 것이다. 이제는 가게가 안정됐지만 다른 창업을 위해 여전히 급여의 10분의 1을 회비로 낸다고 한다.

이현우 대표는 “십분의 일이 손님들에게 아지트같은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유명해져 나만의 아지트가 될 수는 없겠지만, 도심 속에서 친구네 집에 놀러온 것 같은 편안함과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비싸고 접근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십분의 일에서는 저렴하면서도 분위기 있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주말, 을지로에서 보물찾기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_ 신유정 수습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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