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는 자전소설이자 당대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한 소설이다. 작가 본인이 마울브론 기숙신학교를 1년 만에 중퇴한 후, 시계 부품 공장과 서점을 전전한 경험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한스는 재능이 넘치고 열심히 공부하는 인물이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그를 아버지는 자랑스러워하고, 선생님들은 대견해한다. 구둣방 플라이크 씨는 그를 지나치게 공부만 한다고 걱정하나 한스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해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권위적이고 엄격한 신학교 생활에 점점 쇠약해지고 퇴학을 당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대로 기계공이 돼 사회에 진출한다. 그러나 결국 방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걷다 강물에 빠져 죽는다.

소설은 당대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했지만, 책에서 묘사하는 한스의 인생과 주변 환경은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우리 사회를 떠오르게 만든다. 자식이 대학에 간 뒤 공무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인 주인공의 고향 마을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생각하는 한국사회를 연상시킨다. 주인공이 노는 대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대견하게 여기는 아버지와 선생님들은 여러 매체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일부 한국 학부모와 고등학교 선생님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스의 인생은 즐겨야할 동아리 활동조차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고, 시험을 유일한 길로 여기다 떨어지면 스스로를 죄인처럼 여기고, 거대한 제도에 순종하며 곪아가는 한국의 청년을 묘사하는 것 같다.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최성욱 역, 아름다운날, 2013

주인공의 마을 슈바르츠발트는 검은 숲이란 뜻이다. 검은 숲은 소년에게 무엇을 권하고, 어떻게 대했는가? 어둠은 소년의 시야를 가렸고, 소년의 의사에 상관없이 정해진 길을 걷도록 인도했다. 누구도 그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숲 자체가 그를 압박했고, 정해진 길이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소년은 길 위에서 교육제도라는 수레바퀴에 깔려 죽고 말았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06년 발표된 작품이지만, 독일의 작가가 113년 전에 제기한 이 문제를 우리는 그대로 겪고 있다.

정치권은 교육개혁을 두고 특목고 폐지와 수시와 정시 문제로 계속 입씨름을 하고 있지만 두 쟁점의 방향을 떠나 이것이 학생을 위한 개혁인지, 자유를 주는 진정한 해결방안을 위한 것인지 한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검은 숲에서 스스로 방황하지 않게 하는 진정한 방법을 찾기 위해 길을 깔아 가로등을 설치하는 대신 어둠자체를 드러낼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길이 아무리 밝아져도 수레바퀴는 녹슬지 않고 계속 구를 테니까.


이길훈 수습기자 greg030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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