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사박물관 탐방기]


▲ 과거 북부지방법원과 검찰청으로 사용되던 서울생활사박물관(오른쪽)과 서울여성공예센터(왼쪽)이다.

지난 7월 26일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서울북부지방법원·검찰청 자리에 서울역사박물관의 분관인 서울생활사박물관이 임시 개관했다. 법원과 검찰청이 2010년 도봉구로 이전하면서 빈 건물로 남아있던 이곳은 개인의 의·식·주와 관련된 생활 전반의 역사, 즉 생활사(生活史)를 주로 다루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지하철 6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태릉입구역 5번 출구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두 건물이 과거 서울북부지방법원·검찰청 청사로 쓰였던 건물로 검찰청 건물은 서울여성공예센터가, 법원 건물은 생활사박물관이 됐다. 서울여성공예센터 뒤편으로는 과거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들이 수용됐던 구치감이 보존돼 있어 본래 건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박물관은 크게 세 개의 상설전시실로 이뤄져 있었다. 첫 번째 전시실 ‘서울풍경’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의 서울의 일상 풍경을 담은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두 번째 전시실 ‘서울살이’는 서울 사람들의 결혼, 출생과 같은 생애 전반의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마지막 전시실 ‘서울의 꿈’은 서울 사람들의 꿈, 그중에서도 주거, 교육, 직업에 대해 다룬다.

‘서울풍경’,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 서울의 변화 과정

첫 번째 전시실 ‘서울풍경’의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로 두 대의 자동차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현대자동차의 ‘포니’와 영화 <택시운전사(2017)>의 주인공이 탔던 기아자동차의 ‘브리사’이다. 과거 서울의 거리를 누볐을 이 두 자동차는 어린 세대에게는 신기함을, 장년 세대에게는 추억을 선사한다. 실제로 이 두 대의 자동차 앞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어린이와 어르신이 많았다.

자동차 주위로 전시된 사진, 영상 자료는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빠르게 변화한 서울 풍경을 보여준다.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 시내는 1960년대를 거치며 복구됐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은 서울의 인구를 급격히 증가시켰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주거난을 비롯해 교통난, 교육난 등으로 이어져 서울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 논밭이 있었던 한적한 강남 지역은 아파트 숲이 됐고, 지하철과 버스는 서울 곳곳을 이어줬다. 전시된 사진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서울 사람들이 짓는 얼굴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된 것들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재용 감독의 작품 <한 도시 이야기(1994)>였다. 영상은 봉천동이나 상암동과 같은 일반 주택지와 명동과 같은 번화가 등 서울 곳곳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 영상은 모두 1994년 6월 9일 하루 동안 72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촬영한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잡담하는 사람들,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하는 학생들, 빗자루로 집 앞 골목길을 청소하는 모습이 담긴 이 영상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우리 세대의 모습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 말인즉슨,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맞아 서울 정도 1000주년인 서기 2394년에 개봉 예정인 타임캡슐에 이 작품이 들어간 것이다. 문득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게 될 후손들의 서울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 1975년 최초 생산된 현대자동차의 포니. 포니는 택시로도 사용돼 서울 거리 곳곳을 누볐다.

▲ 과거 사용되던 여러 종류의 교과서들. 미군정 시기의 임시 교과서부터 90년대 교과서까지 전시돼 있다.

‘서울살이’,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마주하다

두 번째 전시실 ‘서울살이’는 서울 사람들이 겪은 생애 속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빠르게 변화한 도시와 같이 결혼 문화도 세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했다. 세대를 대표하는 결혼식의 이야기가 실제 결혼사진이나 여러 물건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은 1968년 1월 21일에 결혼한 양복점 재단사 진기홍의 결혼 이야기였다. 을지예식장에서 식을 올린 신혼부부는 곧장 택시를 타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한강다리를 건널 때, 한 무리의 헌병들이 차를 세우고 검문했다. 군인들은 택시에 장식된 꽃과 뒤에 매달린 깡통을 보고선 신혼부부가 탄 차임을 깨닫고 손을 흔들며 통과시켰다. 영문도 모르고 검문을 받은 신혼부부는 나중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들이 결혼식을 올린 그 날, 북한에서 보낸 무장간첩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했던 ‘1·21사태’가 벌어졌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신혼부부가 식을 마친 후 택시를 타고 서울시내 한 바퀴를 돌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혼여행을 했던 것이다. 신혼여행이라면 으레 공항에서 출발해 해외로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이런 방식의 신혼여행은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보편적인 신혼여행의 목적지는 서울과 가까운 충청도의 온천이나 속리산이나 지리산 등 국내 관광지였다. 이후 1980년대에는 제주도가 주요한 신혼여행지가 됐고 국민 모두가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된 1990년대부터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서울의 꿈’, 서울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가졌던 꿈

마지막 전시실 ‘서울의 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만났던 것은 문패들이었다. 집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표식인 문패는 서울 사람들이 가졌던 ‘집’에 대한 꿈을 대변하는 물건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지난 60여 년간 서울 사람들은 계속해서 주거난에 시달렸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보다 살기 좋은 집을 꿈꾸며 살았다. 그 꿈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낸 방법은 바로 ‘아파트’였다. 제한된 땅 위에 모두가 집을 짓고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 위에 집을 짓고, 또 그 위에 집을 지어 살았다.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방식인 아파트의 등장은 서울의 풍경뿐만 아니라 서울 사람들의 사는 모습마저 바꿨다.

전시실에서 전시를 보던 중에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소리는 분명 중학교 시절 들었던 종소리였다. 종소리가 난 곳을 따라가 보니 서울 사람들의 또 다른 꿈인 교육을 주제로 한 공간이 있었다. ‘입신양명’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특히 서울에서 두드러졌다. 과거 서울 학생들은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명문 고등학교, 중학교를 가기 위한 고교입시까지 치러야 했다. 그러나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늘어나고 사교육이 성행하자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는 평준화가 됐다.

마지막 공간의 주제는 서울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것이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각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한평생 살아오면서 남긴 물건들에는 가장으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인으로서의 꿈과 열정이 담긴 것 같았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두 달간의 임시 개관을 마치고 오는 26일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생활사박물관 개관으로 시민들이 역사의 한 갈래인 생활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사진_ 한승찬 객원기자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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