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9일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한글날이 돌아온다. 한글날은 1926년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념됐다. 지금과 같이 한글날로 불린 것은 1928년 국어학자 주시경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짓고부터다. 이전까지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훈민정음』 반포가 음력 9월에 이뤄졌다는 것에 근거해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에 기념됐다. 그러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며 정확한 반포일이 음력 9월 10일임이 밝혀졌다. 양력으로 치환하면 10월 9일이라 이때부터 지금과 같이 10월 9일에 한글날이 기념됐다.

정부수립 이후 한글날은 1949년부터 공휴일에, 1982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그러다 1991년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가 그 중요성이 인정돼 2005년 국경일로 지정됐고, 2012년에 공휴일로 재지정됐다. 국가기록원은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반포한 세종대왕의 위업을 선양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널리 알려 문화민족으로서 국민의 자긍심을 일깨우고자 함이다”라고 국경일 지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그 설명대로 한글날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함을 되돌아보고 자긍심을 느끼는 날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한글날을 맞아 각종 전시회와 축제를 즐기고, 포털 사이트에서는 영문으로 표기되는 사이트 이름을 한글로 표기한다.

▲ 세종이야기에 설치된 한글 모양 의자. 자음 ‘하’를 캘리그래피한 것을 바탕으로 디자인됐다.

조선시대, 한글의 탄생과 발전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눠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뤘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1443년 12월, 「세종실록」에 기록된 기사는 한글의 시작을 역사에 남겼다. 최만리를 비롯한 보수적인 신하들이 반대상소를 올리기도 했으나 세종은 화를 내며 이를 물리치고 3년 후인 1446년 9월, 한글 창제 배경과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이후 한글은 조선왕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용비어천가』를 시작으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비롯한 불경을 편찬하는데 쓰였다. 또한 『삼강행실도』와 같은 유교이념을 담은 책들을 편찬하고 유교경전들을 번역하는 데도 쓰여 유교 이념을 백성들에게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점차 『노걸대언해』와 같은 외국어 학습교재나 의학서, 병법서 등 실용적인 영역까지 그 쓰임이 확대됐다. 한문을 익힌 양반층 남성들에게만 독점되던 서적과 지식이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것이다.

한글은 학문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생활영역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부녀자들이 편지를 주고받을 때 쓰였고,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의 시가 문학과 『홍길동전』 등 소설이나 수필 같은 산문 문학을 창작하는 데도 널리 사용됐다. 이외에도 판소리나 탈춤의 대본에도 한글이 사용됐으며 점을 치는 책이나 승경도놀이와 같은 놀이에도 한글이 사용됐다.

한글은 근대화 과정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1894년, 고종은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되 한문을 덧붙여 번역하거나 국한문을 혼용할 수 있다”는 칙령을 반포해 한글을 나랏글로 선포했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는 이전까지 혼란스럽던 문자체계를 정리하기 위해 1907년 국문연구소를 세울 것을 고종에게 제안했다. 그는 최초의 한글로 된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펴내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며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하기도 했다. 독립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는 한자를 알지 못하는 민중을 위해 순한글판을 발간해 근대 조선의 상황과 시사문제, 근대 인권과 민권 사상 등의 개념과 가치관을 민중에게 전달했다.

당시 한글은 사람들이 어려운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지식을 공유하고, 문화를 향유하고, 자신의 뜻과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세종이 한자가 어려워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백성들을 가엽게 여겨 애민정신을 담아 만든 한글. 조선시대 한글은 세종의 창제 목적에 맞게 사람들의 생활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한글 글꼴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가 어둠을 밝히다

최근 일본의 DHC테레비의 시사프로그램 <진상 도라노몬 뉴스>에서 일본 극우 패널들이 한글에 관한 망언을 해 논란이 됐다. 패널들은 방송에서 한국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한문을 썼는데 일본이 한글을 통일하고, 한글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한 것이라 주장했다.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어 사전』을 발간하고 『조선어과 교과서』를 통해 한글 교육을 실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의 중요성은 이미 대한제국 때 인지해 국문연구소를 세워 연구 중이었고,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어학회는 한글 보급과 연구를 위해 큰 노력을 했다. 조선어학회는 1908년 만들어진 국어연구학회의 뒤를 이어 명칭을 바꾼 단체다. 일제강점기가 되며 국어(國語)가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가 돼 단체명에 국어란 말을 쓰지 못하게 되자 조선어 연구회로 명칭을 바꿨고, 이후 조선어학회로 바꿨다.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내고, 기관지인 <한글>을 출간해 한글 연구를 계속해왔다. 또한 지금의 한글날인 가갸날을 지정해 기념해왔다.

일제는 1938년 이후 조선어 교육 금지정책을 시행해 1941년에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사상범으로 분류하고 고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어학회는 한글 연구를 계속했고 해방 이후에 『우리말 큰 사전』을 출판했다. 이들이 끝까지 일제에 맞서 한글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글체계성립과 사전 발간 시기는 크게 늦춰졌을 것이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때 한글을 살리기 위해 조선어학회에서 한 일들은 굉장히 소중하다.

21세기 한글, 문화 그 자체가 되다

오늘날 한글은 기나긴 역사를 거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립한글박물관과 같이 별도의 박물관이 만들어져 연구와 홍보가 이뤄지고 있고, <말모이>같이 한글을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할 정도로 한글은 문화소재로서 큰 기능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글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한글은 이제 문화소재가 아닌, 문화 그 자체가 됐다. 창조원리와 간편함 등 읽고 쓰는 글자로서 우수성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글씨가 갖는 문화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글자는 글씨체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모른다하더라고 하나의 문양으로 인식돼 그 선과 모양을 통해 미적가치를 창출해낸다.

한글을 문화로 바라본 것은 의외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의 광고 문구와 간판, 영화포스터, 심지어 예술작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는 다양한 캘리그래피 역시 한글문화이다. 캘리그래피는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다. 한글의 정보화에 큰 역할을 했던 초성, 중성, 종성, 자모음 조합원리가 한글 캘리그래피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조합을 해제하거나 모양을 달리해 만든 한글 캘리그래피는 사람들에게 낯설고 신선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특히 그림을 함께 그려 그림에 어울리게 배치한 캘리그래피는 보는 사람에게 굉장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글꼴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글 문화다. 통일된 글꼴이 아닌 다양한 글꼴이 쓰인다는 것은 글자의 형태가 줄 수 있는 분위기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다. 기존 정보전달 기능을 넘어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기능에도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최근에는 옛 위인을 비롯한 유명 인물들의 글씨체가 하나의 글꼴이 돼 그 사람을 되새기는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다양한 글꼴을 제작하는 소재로서 한글이 가진 문화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가하면 한글을 소재로 여러 현대 미술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모음체계와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조합체계가 조형적으로 다양한 풀이가 가능하다보니 이를 분해하고 재조합 하는 등 디자인적으로 한글을 재해석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한글을 여러 형태로 수놓아 마치 아름다운 문양이 있는 보이는 옷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유행하는 ‘야민정음’ 역시 한글문화로 볼 수 있다. 야민정음이란 ‘띵곡’, ‘머학교’등 글자의 형태로 인해 다른 단어로 읽히는 글자 간 유사성을 이용한 것이다. 야민정음을 한글 파괴로 보고 비판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글이라는 하나의 문자체계를 가지고 이 같은 유희를 즐기는 것은 옛날 양반들이 한자로 즐기던 파자놀이처럼 그 문자를 익히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행위다. 이야말로 사람들이 글자를 쉽게 익혀 쓰게 하고자 했던 세종의 바람이 이뤄졌음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한글은 576년의 역사 동안 한글은 민중에게 지식을 쉽게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해줬으며, 이제는 문화 그 자체가 돼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볍게 생각하면 그저 글자 하나일 뿐이지만, 한글날이 다가온 만큼 한글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역할의 소중함을 느끼고, 한글의 아름다움을 즐겼으면 한다.


글·사진_ 이길훈 수습기자 greg030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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