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즈니의 실사화 영화들이 연이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릴 적 추억이 실사화 됐다는 점도 인기의 요인이나 이전 애니메이션에 있던 성차별, 인종차별 등 문제점들이 개선된 점 등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점을 돌려 생각하자면, 우리가 어릴 적 즐기던 작품들에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점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인종차별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불쾌한 사회문제다. 지금 유명브랜드의 광고나 스포츠 등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기사화되고 사람들은 분개하고 잘못된 것이라 성토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종차별이 가득했던 문화를 맘껏 향유했다. 우리는 과연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았을까? 차별이 유머로 받아들였던 시절을 다시금 되짚어보고자 한다.

블랙페이스부터 오리엔탈리즘까지

<톰과 제리>, <디즈니 만화영화> 등 우리가 좋아했던 그 때 그 이야기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사랑을 받고 있는 대중적인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대중적인 작품들에도 인종차별이 가득했다. 이 작품들이 처음 제작된 1940년대는 인종차별이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대놓고 유머코드로 사용되거나 심지어는 작품주제로 사용됐다.

<톰과 제리>는 구두약을 이용해 톰이나 제리가 검은 얼굴과 두껍게 강조된 입술을 가지는 블랙페이스 개그가 빈번하게 사용됐었다. 블랙페이스는 백인 배우가 흑인 역할을 맡아 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이다. 얼굴을 검게 칠하고 입술을 과장되게 표현하곤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 흑인을 희화화했으나 1960년대가 되서야 인종차별적이란 이유로 사라졌다. 1940년대 <톰과 제리>를 비롯한 당시 애니 속에는 블랙 페이스가 유머코드로서 빈번히 나왔다. 이런 인종차별 요소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970년대부터 국내에 방영될 때 편집되지 않은 채 송출돼 국내 어린이들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유럽에서 제작된 작품들 역시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1920년대부터 연재된 벨기에 유명만화 『틴틴의 모험』에서는 흑인들에게 주인공 틴틴과 강아지 밀루가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는 에피소드가 나왔으며 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에서는 삐삐가 자신의 아버지를 ‘검둥이들의 왕’이라 소개하는 대사가 있는 등 작품에 흑인을 미개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인종차별적 시선은 다른 인종들에게도 이어졌다.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은 문제라는 인식이 흑인차별보다도 늦게 이뤄져 최근작품에도 종종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1992년 개봉한 <알라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디즈니는 ‘이방인의 귀를 자르는 곳’이라는 가사를 <알라딘> 속 노래에 넣는 등 아랍권을 무섭고 야만적인 곳으로 표현했다. 그렇다고 이 차별적 시선이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초기 <톰과 제리>에서 팔자수염에 찢어진 눈을 가진 중국인을 묘사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앞서 언급한 <말괄량이 삐삐>에서도 주인공 삐삐가 눈을 찢는 장면이 포함됐다. 이처럼 편견과 무지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들은 문화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행해졌다. 그러나 서구권만 가해자인건 아니다.

▲ 만화 <톰과 제리>의 한 장면. 1945년 7월 7일 첫 상영된 에피소드 에서 블랙페이스가 유머코드로 사용되고 있다.

인종차별, 모든 이들의 문제

우리나라 역시 문화 내 인종차별에서 그리 자유롭지는 않다. 심지어 지금도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작품과 공연이 논란이 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인기를 끈 ‘시꺼먼스’를 비롯해 웃음이라는 명목 하에 흑인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쇼를 한 경우가 최근까지도 많다. 또한 몇 달 전 한 웹툰에서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를 희화화해 인종차별로 물의를 빚었다. 뿐만 아니라 학습만화인 <Why? 한국사 시리즈>에서조차 일본인을 지나치게 튀어나온 덧니를 가진 모습으로 그린다.

이렇듯 우리나라 역시 문화 속 인종차별이 심각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은 백인들을 상대로도 이뤄진다. 백인들의 코를 지나치게 큰 코로 묘사하거나 굉장히 털이 많고 험상궂은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동양인들끼리도, 백인을 상대로도 일어나는 것이 인종차별이며 이는 문화에서도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은 백인이 행하는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가해자고 피해자인 문제다.

인종차별적 표현, 어떻게 다뤄야할까

인종차별적 표현이 쓰인 작품들을 앞으로 어떻게 다뤄야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생각보다 그리 간단하지 않다. 수정을 하면 차별의 역사를 지우게 되고 그대로 두면 문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문화계 대처를 보면 두 점을 모두 고려하여 원본들을 그대로 두되 경고문을 삽입하고 수정된 본을 배포하는 방법을 택한 경우가 많다. <톰과 제리>, <루니 툰>은 원본 모음집을 따로 두되 영상 초반부에 경고문을 삽입했다. 잔혹성이 제거된 채 전해진 동화들처럼 시대에 맞는 문화를 물려주되 과오를 잊지 말자는 뜻이 담긴 방안이다.

오늘의 가치로 과거를 판단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있음에도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콘텐츠가 미래세대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인종차별이 지금도 존재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가볍게 다뤄져선 안 될 문제가 가벼워질 때, 사회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강도가 무거워지는 법이다. 당장 기존 문화를 향유한 세대 중에서도 문제점을 깨달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문화라는 관념이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이 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차별이란 문제를 문화에서 뽑아내고 문제를 문제로 다루지 않은 시간들을 박물관으로 보내 반성해야한다.


이길훈 수습기자 greg030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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