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완전기억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TV에 나온 그 사람은 ‘20년 전 오늘 자신과 대화했던 사람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억 일부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단어를 암기하지 못해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에 와서 무언가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지난 중간고사 기간 도서관에 틀어박혀 학자들의 주장과 이에 대한 비판, 다양한 공식과 이론을 외우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일상에서도 무언가를 망각하는 일이 잦다. 연초에 했던 다짐은 연말이 되면 항상 잊히고 만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한 즐거운 추억조차 언젠가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심지어는 자신이 과거에 지녔던 생각이나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그것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례로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은 성장하고 나서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을 당시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기억함으로써 배우고 학습하지만, 때로는 망각의 함정에 빠져 이전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지금은 신문사에 없는 선배 기자가 당시 수습기자이던 나에게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마음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영향력과 반비례 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수습기자로서 현장에서 취재할 때는 선배 기자의 행동이나 시스템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자신이 선배 기자가 될 때는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다짐하지만, 정작 그 ‘선배 기자’가 된 자신은 그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어 문제점을 고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선배 기자’가 된 지금,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의욕을 망각한 지금, 때로는 무언가를 변화시킬 의욕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었던 과거의 나 자신이 부럽다.

망각의 함정에 빠져버린 상황에서, 바람직한 단체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나 자신이 문제점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선, 다른 사람의 의욕이 찾아낸 문제점을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단 신문사뿐만 아니라, 최근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 사회 전반에 던지는 질문이자 나름의 해답이다.

이정혁 기자 coconutchips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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