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태(도행 18)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1963년 6월 26일, 100만이 넘는 서베를린 대중을 향해 미국의 대통령이 외친 한 마디다. 실제 베를린의 시민도. 독일의 국민도 아닌 그가 베를린의 시민임을 자처한 연유는 무엇인가. 정치인으로서의, 그것도 미국이라는 당시 양극 체제의 한 축을 이끌어 나가던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나온 말이 ‘정치적 동기’를 전혀 내포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주 짧은 한 마디에 불과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복잡한 정치적 언행으로 치부하기에, 그의 한 마디 말이 전달하는 바는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했다. 대강 그것은 자유와 인권을 포함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온전히 주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존 F. 케네디가 스스로를 베를린 시민으로 선언할 당시, 독일은 동·서로 분단된 상태였다. 이전까지 수도였던 베를린 역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의 분할을 피할 수 없었다. 동·서 냉전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이 도시를 둘로 가로지르며 솟아 있었다. 장벽을 사이에 두고 한 편에서는 자유와 인권 보장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 정치가, 다른 한 편에는 기본권이 빈번히 통제되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허울뿐인 민주 정치가 정착했다. 사방이 동독 영토와 맞닿은 서베를린은 인간이 기본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베를린이자 자유세계의 땅 끝과 같은 장소였다. 케네디는 정치가이기 이전에 자유와 인권 등 기본권 보장의 당위를 의식하는 평범한 시민이었을 것이다. 그가 연설 중 ‘베를린 시민’임을 선언한 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에 맞서 인권탄압으로 얼룩진 영역 속에 고립된 베를린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유대의 표현이었다. 그 후로도 오랜 기간 동안, 장벽은 자유로운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을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인간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은 결국 붕괴됐다. 장벽의 붕괴는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붕괴를 상징하는 일대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올해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았다. 장벽 붕괴 후 30년이 지난 오늘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인권, 자유, 평등의 가치는 모든 곳에서,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세계는 붕괴된 장벽의 잔재를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것 같다. 지역에 따라 인간의 기본적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는 곳이 여전히 존재하며 설령 민주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춘 국가라 할지라도 비인권적인 법제가 버젓이 시행되곤 한다. 오늘도 홍콩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거리 시위가, 미국과 유럽에서는 난민과 유색인을 향한 제2의 장벽이 새로 지어진다. 멀리까지 찾아볼 필요도 없다. 남북의 관계 개선 과정과는 상관없이, 북한에서의 인권 탄압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으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장벽에 고립된 이들이 많다. 과거 케네디가 베를린 시민들에게 그러했듯, 우리 역시 고립된 이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인권과 자유에 반하는 것이 당위에 반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베를린 시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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