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이라는 대사를 알고 있는가? 한국문학사상 가장 단호하다 느껴지는 이 대사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등장하는 대사다. 『광장』은 집단적 공간인 ‘광장’과 개인적 공간인 ‘밀실’이라는 두 공간을 대조시킴으로써 남북한 양측의 정치체제를 모두 비판하고 이데올로기 대립을 비판한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에 사는 철학과 학생이다. 본인은 이데올로기에 별 관심이 없으나 아버지는 월북한 공산주의자다. 명준은 남한을 타인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광장 없이 개인의 은밀하고 자유로운 장소인 밀실만이 존재하는 곳이라 여긴다. 그는 소통의 부재 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게 되자 밀실을 침해받는다고 느끼고 월북한다.

아버지의 주선으로 기자로 일하게 된 그는 북한은 밀실이 없으며 광장 역시 철저히 통제받는 사회임을 깨닫는다. 남북한 모두 개인장소와 공공장소 중 하나가 결여돼 있으며 장소가 있어도 위협받고 통제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명준은 이를 깨닫고 깊은 환멸을 느낀다. 결국 명준은 6·25전쟁에서 포로가 된 후 돌아갈 국가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도달하기 전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 최인훈 저, 『광장 / 구운몽』, 문학과 지성사, 2010.
1948년부터 전쟁 시기까지의 명준은 이상향을 찾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진다. 작품은 이를 통해 광장과 밀실이 건전한 상태로 공존해야함을 보여준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편 사람들 간에 교감이 이뤄지는 사회, 이데올로기 투쟁대신 인간적 교감이 이뤄지는 사회를 이상향으로 제시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 인터넷은 우리에게 광장인 동시에 밀실인 공간을 제공한다. 블로그, SNS 등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광장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익명성을 통해 이용자에게 자유롭고 은밀한 밀실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는 이 훌륭한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가? 슬프게도 지금 인터넷 공간은 발언과 생각에 있어 자유롭고 건전한 교류가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다. 은밀한 개인의 욕망과 거친 말들이 밖에 드러나고 타인에게 전달되는 굉장히 위험한 공간이 됐다. 익명  뒤에서 나오는 걸러지지 않은 악플과 사이버 괴롭힘이 사람을 상처 입히고 죽이기까지 한다. 이념을 둘러싼 거친 갈등 역시 인터넷에서 계속 진행 중이다. 명준이 찾던 이상적 공간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이상향의 부재가 아닌 인간 본성에서 비롯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길훈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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