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 사랑은 불멸의 테마입니다. 수많은 사랑이야기 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행복한 사랑이야기도 있는 반면 쓸쓸한 사랑이야기도 있는데요. 이런 쓸쓸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 중 가장 극적이고 널리 알려진 이는 바로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인 베르테르일 것입니다. 로테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베르테르, 그러나 로테에게는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있었습니다. 로테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베르테르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로테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그는 결국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비극적인 소설은 유럽 전역에 예상 밖의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럽의 청년들이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유럽 전역을 휩쓴 지 약 200년 뒤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David Phillips)는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 명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 인기를 누린 고 안재환 씨나 최진실 씨가 사망했을 당시 자살률이 높아진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현상을 낳았을까요. 그 심리적 기저를 탐사해봅시다.

탐사의 시작은 ‘공감(Sympathy)’입니다. 공감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입니다.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타인이 느끼는 바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공감 능력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감은 때때로 우리에게 버거운 짐을 넘겨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공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히 그 사람의 고통을 위로하는 수준을 넘어 그와 똑같은 수준의 고통을 느끼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이 선망하던 인물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면 그의 죽음마저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그리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깊은 공감을 위해서는 자신과 대상간의 강력한 ‘동일시(Identifi-cation)’가 발생해야 합니다. 여기서 동일시란 ‘타인을 자기의 대신이라고 보는 경우’로 자신을 마치 문학작품이나 연극 중의 인물처럼 느끼는 경우도 포함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과 대상간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당시 유럽 사회는 경기가 침체되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정치적 구심력도 약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상실감과 좌절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 속에 있던 청년들에게 베르테르는 자신들의 비관적인 처지와 동일시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은 ‘모방(Imitation)’입니다. 프로이트는 정서적 결합이 높지 않은 상대에 대한 공감은 감정이입에 그치지만 정서적 결합이 높은 상대에 대한 공감은 동일시를 통해 모방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베르테르와 동일시하던 사람들에게 베르테르의 자살은 섬뜩한 결말이 아니라 낭만적인 선택처럼 비춰졌을 지도 모릅니다. 베르테르처럼 열렬히 갈망했으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청년들에게 베르테르의 행동은 일종의 지침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현대에서도 유명인의 죽음은 일반인의 죽음보다 우리에게 더 깊숙이 다가옵니다. 유명인들은 일반인보다 대중들에게 많은 삶을 노출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쉽게 정서적으로 결합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선망의 대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모방되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유명인의 자살이 매스컴에 보도됐을 때 매우 강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최근 유명 연예인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베르테르 현상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유명인의 자살과 그에 따른 모방 자살이 단순히 가십거리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었는지 섬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이들은 단지 어떤 유행에 합류하듯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에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상황인식-외부(유명인)의 부정적 상황에 대한 공감-유명인과 자신의 동일시- 유명인의 행동 모방’이라는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김세훈 기자 shkim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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