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넌 B급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발끈하기 마련이다. B급은 왠지 아류의 전형이고 A급을 넘보지 못하는 위치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B급이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로 쓰인다. B급이라는 단어는 미국 영화계의 위기와 함께 문화산업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경제 공황으로 인해 영화산업에 큰 타격을 입은 할리우드는 관객을 더 모으기 위해 A급 영화를 보여준 후 덤으로 B급 영화를 상영했다. 이것이 B급 영화 탄생의 시초다.

‘덤’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예산도 저예산으로 진행했으며 인기가 없는 배우들이 출연했고 A급을 어설프게 모방하기도 했다. 당연히 완성도는 떨어졌고 특유의 허접함과 허술한 스토리는 B급의 전형이 됐다. 그러나 B급의 저급하다고 치부되던 감성은 새로운 장르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B급 감성의 탄생, 더 이상 아류가 아니다

B급 특유의 엉성하고 자극적이지만 재밌고 친밀한 느낌을 찾는 마니아층이 생기며 B급은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다양성 강조와 매체의 발달, 자체적인 장르로써의 발전을 통해 장점만을 살린 특유의 B급 감성이 탄생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이현민 박사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최근 B급의 판단기준도 돈이 아닌 내용으로 바뀌는 게 문화계의 추세”라고 서술한다. 더 이상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것만을 B급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B급 문화가 담아내는 독자적인 내용이 구축됐다. 그는 B급 문화가 “얼핏 보기에 촌스럽고 유치하거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문화, 금기시됐던 소재를 끄집어내는 문화적 경향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한다.

문화계 곳곳에 퍼진 B급 감성

B급 감성은 이렇게 서서히 우리 곁으로 스며들었고 지금은 곳곳에 포진했다. 예능 ‘신서유기’ 시리즈는 원래 TV방영을 목표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초기엔 TV방영 없이 ‘네이버 TV’에 업로드 됐다. 프로그램 소개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차마 볼 수도 없었던 리얼 막장 예능’이라고 내걸며 B급의 전형을 보일 예정이었고 실제로도 탄탄한 짜임새나 화려한 영상미는 없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그 재미를 입증 받아 입소문을 탔고 결국 TV에 정식 편성되기에 이른다. B급 감성의 전형이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산 것이다.

영화 ‘데드풀’은 B급 히어로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전형적인 히어로라 하면 정의를 위해 싸우고 끝내 잡은 악당을 인류애를 발휘해 용서함으로써 모두에게 모범이 된다. ‘데드풀’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적은 잔인하게 죽이며 시민들에게 모범은 커녕 나쁜 행동을 해도 된다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데드풀’은 히어로물의 전통적인 공식을 모두 깨고서도 흥행에 성공해 속편이 제작되기도 했다.

‘아프리카TV’ BJ들의 유튜브 진출도 B급 감성의 역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식은 기성 방송사와 다르다. 소재도 선정적이거나 적나라하고 말투도 훨씬 친근하다. 자본력도 떨어지고 출연진도 무명이다. 이러한 BJ들의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며 유튜브로 진출하게 됐다. 시청자층이 아프리카TV 시청자에서 유튜브 사용자로 대폭 늘어난 것이다.

B급의 무기는 식상함 타파와 솔직함

B급 창작물이 유행한 후에 B급 감성이 번진 것은 아니다. 대중이 B급 감성을 찾았기 때문에 그 수요에 맞춰 B급 감성을 담은 작품이 등장한 것이다. 이현민 박사는 그 이유를 “고상한 주류 문화가 채울 수 없는 대중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라고 분석한다. B급 문화는 A급 창작물이 표현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인간과 사회 이면의 모습을 표현해낸다. 이를 향유하면서 대중은 주류 문화로는 채울 수 없던 내면의 욕구를 채울 수 있게 된다. 히어로가 항상 악당을 용서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우리의 원초적인 욕구와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이런 허전함을 충족시키기는 히어로가 ‘데드풀’이다. 이 박사는 또한 “B급문화의 시작이 ‘소자본, 주류문화 바깥’이었기에 적은 자본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좀 더 적나라한 혹은 솔직한 표현을 구사했고 주류문화의 바깥에서 틀에 박힌 체계와의 차별화를 구사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차별화가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줬다. B급 영화는 그것을 타파해 감상자의 답답함을 해소해준다. 주류문화의 바깥이라고 인식하고 장착했던 적나라함이 대중에게 호감을 산 경우는 바로 ‘신서유기’다. 이러한 경향은 아프리카TV BJ의 유튜브 진출에서도 드러난다. 주류 밖이라고 생각하고 생산한 콘텐츠가 대중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간 것이다.

대세가 된 B급, 그 책임 또한 따른다.

문화계는 이제 대세가 된 B급을 무기로 삼는다. ‘tvn’의 드라마 ‘천리마마트’는 B급을 전면으로 내세워 파격적인 스토리와 소재를 구상했다. 유튜브 시장에선 다소 자극적이지만 솔직한 매력을 가진 BJ들이 인기다. 내용은 B급이지만 콘텐츠 접근성은 커졌다. 접근성이 커진 만큼 B급 콘텐츠의 영향력도 커졌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B급을 표방하는 부적절한 콘텐츠가 만들어진다면 많은 소비자들에게 무분별하게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B급 감성을 사용하는 문화계 종사자들은 B급의 특징은 살리되 대중들이 받아들일 정도로 조절하는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한다. 솔직한 것이 무례함이 되는 순간 대중은 등을 돌린다.

B급이 메이저로 부상하면서 적정선에 맞춰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그러나 창작자는 더욱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대중은 그것을 쉽게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에 B급이라는 칭호가 붙어도 그것이 예전처럼 모두 아류로 평가되진 않는다. B급 문화 중에서도 인간 내면의 욕구나 사회의 이면을 긁는 작품은 색다르고 재밌는 창작물로 인식되는 시대가 왔다.

참고: 이현민, 환상성과 B급 대중문화의 유사성 연구, 영상문화콘텐츠연구, 12, pp.97-117, 2017.

김우진 수습기자 woojin251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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