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트남에 다녀온 선배에게 베트남의 공안(公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생겨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공안 불러라”는 말만 나오면 얼굴이 사색이 된다고 한다.

한 예로, 베트남 여행 중에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소매치기로 추정되는 사람이 계속 발뺌을 하더란다. 그래서 “공안, 공안”이라고 말했더니 그 사람이 두 손을 맞대어 싹싹 빌면서 잘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공안이란 실체가 없더라도 그 함의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공안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공공의 안녕질서’로 나온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공안이라는 단어는 사회질서를 담당하는 비밀경찰 정도로 인식된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공안이 서슬 퍼런 의미로 존재하던 시기가 있었다.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고 공산주의를 막겠다는 거창한 이유로 만들어진 공안은, 베트남 사람들이 공안이라는 말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존재했었다.

공안문제연구소. 이 연구소는 1988년 설립되어 공산주의를 비롯한 좌익사상에 대한 연구 및 대응 이론의 개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증거물 감정, 기타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된 정치 이념 및 대책 연구에 관한 사항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이 단체가 얼마 전 국정감사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등 명서들에 대해 10년 동안 사상 검증을 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의 이 책은 세계 각 국의 사회학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한 흐름을 정리한 책으로 명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베버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칼빈주의의 ‘예정조화설’에 입각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신에게 선택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신의 소명에 따라 부를 축적해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근면, 검소, 성실 등의 금욕적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이 사상 감정을 받아야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공안문제연구소에서 5만 권의 책을 이적표현물로 감정했다고 한다. 사회학도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 기본이 되는 교양서인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이 이적표현물로 감정된 정도인데, 다른 5만 권의 책은 어떤 근거나 잣대로 이적표현물을 감정했을지 그 공정성이나 객관성 면이 의심스럽다.

10년 동안 결론을 못 내린 것이 철저한 분석 정신 때문인지 직무유기였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대학에서 필독서적으로 자리매김한 책까지 이적표현물로 주장하면서까지 공안문제연구소는 도대체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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