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가 이전함에 따라 그들이 주둔하던 부평의 땅 13만평은 새 주인이 필요해졌다.

인천 시민들은 96년부터 2002년까지 7년 동안 이 땅의 반환을 요구했고, 반환운동을 펼쳐왔다. 그리고 지금, 두 명의 땅 주인이 새롭게 나타났다. 유신회를 조직하고 일진회를 만든 대표적인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과 순국지사 민영환의 후손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에는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이라는 작위를 받은 이근호의 손자가 충청북도 국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97년에는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의 후손들이 땅을 찾기 위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상속과정이 적법했다면 당연히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친일파 후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에 반해서 얻은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 지금의 재산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친일파의 재산은 보호를 받아야할 대상이 아니라 회수해야할 그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죽어간 독립투사들은 ‘독립된 세상’인 지금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세력은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국가가 개인이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재산까지 보호해 줘야하는 이유는 없을 뿐더러, 그럴 가치도 없다.

지난 3월 2일,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열린우리당의 김희선 의원은 이 법안을 제안하면서 “이제라도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진상을 정부차원에서 규명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마련하고 반민족행위의 진상을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사료로 남김으로써 왜곡된 역사와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역사와 민족의 정통성을 왜 바로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었던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 따라서 그에 합당한 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와 민족의 정통성은 단순히 “정통성을 바로 세우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친일세력의 후손들의 잇따른 땅 소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은 작은 일을 통해 정통성은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민족국가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부끄러운 역사는 무조건 잊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고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시민을 대표해서 정치를 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그들도 이제는 제대로 된 ‘편’을 들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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