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가 중단됐다.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한 지율 스님 때문이다. 지율 스님은 100일을 꼬박 채워 단식 투쟁을 했고 결국 정부와 환경 단체 대표로 구성되는 공동조사단이 터널 공사에 따른 환경영향을 다시 조사하기로 했다.

환경보호가 우선이냐 개발이 우선이냐에 대한 논란을 벌이기 이전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생각해본다. 지율 스님은 왜 100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해야만 했을까. 정부는 왜 다시 환경영향평가를 하기로 했을까.

천성산 터널공사같이 다양한 사람과 집단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공공 정책을 계획하고 결정할 때에는, 그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집단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천성산 터널공사는 다양한 집단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

공사로 인해 멸종될 위기에 처한 생물들, 산을 없애고 철도가 들어서는 환경 속에서 생활을 이어나가야할 그곳 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아예 처음부터 공사 결정 요인으로 속해 있지 않았다.

물론 지율 스님의 행동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사업이 한 사람의 투쟁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한 자칫하다가는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생긴다.

하지만 국가의 공공 정책은 국민의 대표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결정 과정에는 다수결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다수결의 원리는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원리가 아니라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사회의 공동 의지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리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할 때 일부 몇몇의 의견으로 정책이 좌지우지 될 수 없는 노릇이다. 국민 하나하나의 이익과 의견이 존중되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이상향으로만 생각되어서는 안된다.

참여정부 2년이 지났다. 참여정부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선거 운동 모금과 선거 운동으로 출범한 귀중한 이름이다. 하지만 새만금 문제를 비롯해 이라크 파병문제, 부안의 핵폐기장 건설 문제, 이번 천성산 터널 공사 문제까지 ‘참여 정부’로 시작된 노무현 정부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국민’은 없는 듯 보인다.

100일 단식을 해야 겨우 자신의 의견을 정부에 주장할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만 가질 뿐이다. ‘국민 한 명 때문에 파병을 철회하는 나라는 없다’며 고(故) 김선일씨를 보호하지 않았던 씁쓸함이 되살아난다.

나사 하나가 빠진 책상은 삐그덕 거릴 수밖에 없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국민의 의견이 전달되지 않고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책을 수행하게 될 때 삐그덕 거리게 될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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