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의 실질적 문화 만드는데 공헌하는 시대문화 되길

정보의 홍수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정보의 태풍속에 있는 것과 같은 세상이다. 지천에 널린 것이 정보이지만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유용한 정보인지 알 도리가 없고, 하나의 믿을 만한 잣대가 없는 이상 그 산더미 같은 정보도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생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시립대신문의 시대문화 면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대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활동을 소개시켜주고 나아가서 대학생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사려 된다.

지난 532호에서는 ‘헤이리 예술마을’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 기사에서는 헤이리 예술마을에 대한 묘사와 마을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서부터 특색 있는 전시관까지 그 곳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필자도 기사를 읽으면서 그런 그림 같은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고 한 번 쯤은 그 곳에 가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호의 시대문화면이 대학문화의 한 방향을 제시하고 대학생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기에는 몇 가지 부족한 면이 보인다. “헤이리 예술마을”의 기사는 아름답다. 그리고 그 곳이 상당히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겠고, 그곳이 왜 주목받는 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한번 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곳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기사에서 설명한 그 ‘멋진’ 장소는 헤이리 마을의 어디쯤에 위치하였는지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없다.

두 개의 부제목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포함하는 부제목의 설정 ‘자연과 함께하는 헤이리, 음악·차·그림이 있는 이비뎀’은 독자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혼란을 유발시킨다. 또한 기사에 게재된 많은 사진들이 어느 곳을 지칭하는 지에 대한 설명의 부재 또한 그 곳에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을 다시 한번 접게 만든다.

기사의 생명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어 어떠한 활동을 하는 데 힘을 실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살리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생산하며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순환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시대문화면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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