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던 장 폴 사르트르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프랑스에서는 올해를 <사르트르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방면에 걸쳐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르트르와 현대의 지성>이라는 주제로 큰 규모의 학술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사르트르가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영광을 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실존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치열한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전개하였던 그의 업적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분단과 6. 25의 상처로 허덕이던 무렵,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와 함께 다가온 그의 모습은 얼마나 매력적인 위안이었으며 빛나는 모범이었는지 모른다. 그 매력의 핵심에 그가 완전히 독창적으로 정립해 보인 <자유>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생전에 이처럼 빛나는 존재였던 사르트르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다시 솟아나는 것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거대한 지성이 바로 그 거대함 때문에 더욱 거대한 규모로 보여준 모순과 어둠의 측면을 다시 떠올리며 착잡한 감회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사르트르는 소련의 포악한 독재자 스탈린을 지지하였다. 그는 스탈린이 히틀러에 못지않은 규모의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카뮈를 상대로 하여 벌였던 유명한 논쟁에서 그는 자신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잘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한 바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변함없이 스탈린을 지지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6. 25 당시 북한을 지지하였다. 처음에는 그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북한을 지지하였던 것이지만,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자유의 이념을 온 세계에 퍼뜨리는 전사였던 그가 보여준 이러한 모순과 혼란은 관념적인 지성이 자칫하면 빠져들 수 있는 오류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나는 사르트르의 빛나는 지성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그의 이러한 모순과 혼란에서 우리가 참으로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리 위대한 지성이라도 살아 숨쉬는 인간의 구체적인 아픔을 중요시하는 태도로부터 멀어지거나 객관적인 사실의 확인에 불철저하거나 할 경우엔 참혹한 반인간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사르트르의 평생에 걸친 친우이자 논적이었던 레이몽 아롱이 일생 동안 구체적인 인간의 아픔과 객관적 사실을 존중하는 정신을 견지하였기에 비록 사르트르처럼 화려한 명성을 얻지는 못하였을지언정 그처럼 반인간적인 파괴의 세력을 편드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아울러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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