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그렇듯 난이도 문제로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아비규환. 그 가운데, 한 학생의 죽음에 관한 비보(悲報)가 전해졌다. 사인은 수능 성적에 대한 비관 자살이었다. 예상보다 성적이 낮게 나오자 ‘낙오자라 불릴까봐 두렵다’며 자살을 택한 것이다.
이 어리석고도 슬픈 죽음 앞에서 오히려 이 사회를 ‘비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대학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게끔 교육받고, 12년을 오직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매진해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채 기형적인 이 사회에 제 몸을 맞춰 가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삶에 있어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낳는 것은 일차적 원인은 현재의 수능시험이 결코 합리적인 시험 형태가 아닌 때문일 것이다. 전혀 전문화·다양화되지 못한 채 폭력적이라 할 만큼 획일적이다. 무엇을 전공하려 하건 대학에 가려면 획일적으로 같은 수능을 치러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야 한다.
그나마 기회도 일년에 단 한번뿐이다. 단 하루의 시험으로 인생의 등급이 매겨지는 수능제도가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으니, 가히 ‘살인적인’ 교육제도라 할 만하다. 단순히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입시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절실한 것은 학연으로 뭉치고 학벌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적 풍토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결코 그 사람의 능력이나 인성을 나타내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본에서 지방대 학사 출신의 회사원이 노벨화학상을 탄 것에 대해 그렇게 감탄하며 떠들어댔다면 조금이라도 반성하고 달라지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저 죽음을 그저 연례행사처럼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학벌 없는 사회, 학생들이 학생다운 활기를 띄는 사회를 만들자. 기껏 수능 점수나 대학 합격 여부를 가지고 한 인간을 낙오자 취급하는 곳이 바로 이 사회이다. 그래서 어린 학생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사회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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