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간여행을 해보자. 여기는 정확히 22년 전인 80년 5월 18일, 우리나라의 남서쪽에 위치한 광주 시내의 금남로다. 금남로에서 도청으로 향하는 길목에 10대 정도의 트럭과 총을 휴대하고 있는 수 백 명의 군인들이 보이고 그 아래로 30여명의 사람들이 손을 뒤로 묶인 채 엎드려 있다. 군인에게 상당한 폭행과 구타를 당한 듯 사람마다 한결같이 옷에 피가 묻어있고 심각한 타박상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들은 이들을 어디론가 연행해 갔다. 이제 전남대로 가보자. 전남대 정문에는 20여명의 군인들이 방패와 총을 가지고 학교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학교를 들어가려고 했던 학생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과 군인만을 쳐다보며 서 있다. 점점 학생수가 늘어나자 학생들은 용기를 얻은 듯 ‘학내 진입을 허용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군인에게 투석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항하여 군인들은 학생들 대열 사이로 뛰어가 학생들을 군화발로 차고 곤봉을 휘두르면서 진압했다.

아마 우리 세대는 5.18 광주항쟁을 생각할 때 위 영상과 같은 표피적이고 단편적인 모습 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TV 다큐멘터리나 5.18 관련 기념관 혹은 전시관에서 보는 영상물이나 사진을 보고 ‘참 참혹했구나, 우리나라 군인이 우리국민에게 어떻게 저런 행동을 저지를 수 있지’ 하는 등등의 생각만을 가져봄직하다. 5.18 광주항쟁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피를 흘려가며 투쟁을 했는지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5.18 광주행쟁은 이런 조각된 기억들로 의식하기에는 너무나 큰 역사이다.

5.18 광주항쟁은 한국민주화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운 사건이다. 목숨을 각오하면서까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5.18 광주항쟁은 아직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도 명확히 인식되지 못했다. 한 연구소에서 설문조사 한 결과 광주 시내 청소년 2,723명중에 5.18 발생시기를 정확히 대답한 학생이 32.4%에 불과했다.

5.18 광주항쟁은 아직 살아있는 역사이다. 따라서 5.18광주항쟁을 단순히 기념일로 박제화 해서는 안되며 사람들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남아있는 사건으로 만들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5.18 광주항쟁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과 진상을 철저히 연구·규명해야 하는 한편 그 뜻을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해야한다. 더불어 우리들 자신도 5.18 광주항쟁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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