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꼭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필자는 순종 해방둥이에다가 전근대-근대-탈근대로 급변하는 한국사회를 중층적으로 체험하였기 때문인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일본식 교육을 받은 선생에게 동요 ‘내가 살던’이 아닌 ‘나의 살던’ 고향을 배웠고 친일파(?)가 장악한 교과서로나마 정규교육을 최초로 제대로 받은 세대이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로부터 듣고 익힌 일본어의 잔재는 일상생활 깊숙이 침윤되어 ‘벤또’가 도시락으로 극복될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캠퍼스 ‘프랑카드’에는 심포지엄 대신에 ‘심포지움’이 망령처럼 불쑥 등장하니까.

일본식 발음으로 왜곡된 ‘란닝구’와 ‘빤츠’, ‘파자마’와 ‘잠바’는 서구적 의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불가피했을 것이다. ‘삐라(bill)’라는 말이 반공방첩과 함께 슬며시 사라지더니 ‘찌라시’는 오늘도 조간신문 속에 수북히 살아있다. 한식당에 가도 ‘와리바시’와 ‘사라’는 아직도 건재하고, 그 중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마도 ‘요지’인듯 싶다.

지금도 시장에서 ‘소쿠리’와 ‘다라이’를 팔고 ‘소데’를 잘라버린 ‘나시(민소매)’가 세일 중이며, 자동차 정비소에 가면 ‘빵구’와 ‘밧떼리’ 그리고 ‘밋숑’을 손봐준 다음 ‘빠꾸’로 주차해놓는다. 유흥가의 ‘삐끼’에게 걸려 ‘후앙(fan)’도 없는 지하 술집에서 ‘잇빠이’ 마신 ‘노가다’인부는 바가지를 쓰거나 ‘곤’색 양복 입은 ‘나와바리’ 조폭에게 당할 수도 있다.

아무리 멀티미디어 시대라지만 문자는 여전히 우월하다. 의사소통과 사고의 도구로서 우리의식을 지배하는 까닭이다. 원천적인 문제는 세계문학전집처럼 일어번역을 토대로 중역된 영한사전이다. Teacher에는 선생과 교사는 있어도 스승이 없고 King에는 왕과 군주는 있어도 임금은 없다.

한마디로 순수 한글이 홀대를 당하는 반면에, 우리말의 약 70%를 차지하는 한자어 중에서도 1/4이 일본 어원이라 한다. 19세기 일본이 서구지식의 번역과정에서 고심하여 탄생시킨 社會, 個人, 近代, 存在 등 신조어를 굳이 폄하할 생각은 없다. 이로 말미암은 우리의 학문적 종속을 운운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현재도 일본문헌을 통하여 들어온 전문용어가 바로 한국의 영주권을 얻는 일이 잦다. 물론 한자를 못 배운 신세대에게는 되레 영어로 토를 달아 이해를 돕는 실정이다.

일본어법은 외래어의 뒷부분을 ‘앗싸리’ 토막내는 버릇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텔레비’와 ‘오토바이’인 데, 여름날 반소매 ‘와이샤츠’에 넥타이 매듯 편리한 점도 있다. 그러나 ‘프로’는 Program이나 Professional, 포르추걸Procento (백분률)인지 너무 다양하여 헷갈린다.

이른바 월북작가인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을 보면 바다라는 우리말에 대한 시인 정지용의 예찬이 나온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정말 크고 넓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왜냐하면, 우미(日), 씨(英), 메르(佛)와는 달리 두 마디가 경탄음인 “아아”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일본은 “어” 발음이 없다.

달러(dollar)는 ‘달라’로, 데이터는 ‘데이타’로, 카버(cover)는 ‘카바’로, 스티커(sticker)는 ‘스티카’로 행세하여 왔다. 요즈음 자주 쓰이는 어젠더(agenda)는 ‘어젠다(또는 아젠다)’로 통용되고 있다. 아아! 광복 60년, 「꼼뿌타」세대는 외친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 살고 있는가? 코리어인가? 아니면 코리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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