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2003년부터 법제화한다고 발표한 호스피스 제도가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호스피스란 사회복지사들이 활동하는 영역 중의 하나로서, 말기환자들이 죽음을 인간답게 수용하고, 생의 마지막 단계를 의미있고 풍요롭게 지내다, 품위 있게 임종을 맞도록 돕는 전문적 서비스이다. 의사, 성직자,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이 팀을 이루어 활동하고, 사회복지사는 환자와 가족의 사회심리적, 경제적 문제에 도움을 제공한다.

그 기원은 중세기 유럽에서 순례자나 여행자, 행려병자들을 쉬게 하고 보살피던 hospice이며 hospital, hostel, hotel 등과 함께, 손님접대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hospitum, 손님을 의미하는 hospece에서 유래하였다. 호스피스를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가는 여행자에게 열려있는 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그 어원의 묘미를 적절히 살린 해석이 아닐까 싶다.

중세 유럽에서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사상이 폭넓게 퍼져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터부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죽어가는 사람을 한 발 먼저 길을 떠나는 선배로 생각하고 소중하게 보살피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서구사회에서는 일찍부터 호스피스가 활성화되어 실시되고 있다. 영국은 의료보장제도인 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그 비용을 지원하며, 미국에서는 1982년에 공적 의료보험인 Medicare 서비스에 호스피스가 포함되었고, 레이건대통령은 재임시절 National Hospice Week을 선포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호스피스를 지원하였다.

우리나라에 호스피스 도입이 늦어지게 된 데에는 죽음을 한사코 외면하려고 하는 문화적 특성도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종교학자 최준식은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내세보다 현세를 중시하는 의식세계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에서 이러한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낳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사망전 2개월간의 의료비가 1년간 의료비의 40%~50%를 차지한다. 대신 이들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제공하게 되면 비용이 거의 5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또한 끝까지 삶을 붙잡으려는 허망한 노력으로 인해 마지막 삶의 질(quality)은 극도로 손상된다.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 갖가지 의료기구에 의존하여, 과도한 약물투여로 인해 거의 혼수상태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는 경우가 많다.

죽음에 대한 회피는 죽음을 앞당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기 환자들을 만나는 것을 불편해하고 꺼리는 경향이다. 어떤 태도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쭈뼛거리게 된다. 이런 환자들은 살아있으되 이미 이 세상에서 소외된다. 육체적 죽음에 앞서 사회적 죽음을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005년 6월에 최준식을 회장으로 한국죽음학회가 창립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비로소 죽음에 대한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 모색이 시작된 것이다. 호스피스는 무엇보다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볼 때,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우리나라 호스피스 제도도입과 활성화를 위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우리사회에 ‘well-being’ 바람이 거세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과정이므로 품위 있게 임종을 맞이하는 ‘well-ending’은 웰빙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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