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저서 가운데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것이 있다. 나는 이 책과의 만남을 계기로 하여, 많은 것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중의 한 가지로, <부계(父系)를 기준으로 해서 작성된 족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생물학적 족보란?

최재천 교수가 그 책에서 족보의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으로 남자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우리 족보와는 달리 생물학적인 족보는 암컷 즉 여성의 혈통만을 기록합니다.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바로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그리고, 이 구절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상세한 과학적 설명을 대하면서, 새삼스럽게, <부계를 기준으로 해서 작성된 족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물음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물음을 앞에 놓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가다 보면, 금방 떠오르는 소설이 두 편 있다. 이문열 씨의 중편 「아우와의 만남」이 그 하나다. 이 작품을 보면, 월북한 부친이 북한에서 새로 결혼하여 낳은 아우를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그 아우를 향하여, <너 우리 집안을 가볍게 보지 마라>라고 한다.

<비록 증직(贈職)이지만 이조판서 좌승지 호조참판의 직함을 가진 조상들과 실직(實職)으로 안동부사며 의령현감을 사신 조상들>을 열거함으로써 자부심을 내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물에 대하여 작가는 아낌없는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작품은, 이순원 씨의 장편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다. 이순원 씨는 이문열 씨보다 아홉 살이나 아래인―그러니까 세대를 완전히 달리하는―작가이지만, 철두철미한 충성심을 가지고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형태의 족보>를 숭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문열 씨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순원 씨 자신과 그의 아들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이 소설 속의 부자(父子)가 족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보면, 여성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아들로만 이어지는 부계 절대주의(父系絶對主義) 족보의 신성성에 대한 티끌만큼의 회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신앙의 자리에 서서, 소설 속의 아버지는, 「아우와의 만남」의 주인공과 똑같이, 자랑스러운 할아버지 누구누구……를 열심히 거명하며, 자기의 <문중>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을 어린 아들에게 주입시킨다.

족보에서 여성은 익명의 존재

이 장면에서 부자간에 교환되는 대화를 따라 읽어나가다가, 나는, <같은 인간인 ‘여성’을 이토록 철저하게―마치 역사의 고리 속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혹은 단순한 ‘익명의 도구’라는 자격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무시해 버려도 되는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그 반성 없는 남성중심주의의 일방적 무한질주 앞에, 공포감마저 느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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