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 건너편에는 그다지 작지 않은 규모의 야채와 생선을 파는 시장이 있다. 그 시장 뒤편에는 가락시장처럼 야채를 거래하는 큰 장터가 있으며, 한 구석에 삼경포장이란 가게가 있다. 그 가게의 입구는 1950년대를 연상케 하는 나무 미닫이 문이다.

닳은 듯 군데군데 색이 엷어진 문틀과 슬며시 벌어진 문틈은 오랜 세월을 힘겹게 지탱해 온 듯 지쳐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낡고 지친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매우 들떠 있었다. 누군가에게 “여기 아직도 이런 문짝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 작은 흥분에 나는 결국 맑은 날을 택해 그곳을 사진에 담아 몇몇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반응은 참으로 한결 같았다. 아련하면서도 가슴이 환해지는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 ‘담장 허물기’로 유명한 대구 시내의 한 골목에 갔었다. 우리 눈에 비친 것은 그다지 길지 않은 골목, 담을 헐어 마당을 개방한 집 한 채, 그 집 건너편의 시멘트를 바른 회색 빛 벽, 그 벽 아래로 놓인 몇 개의 이끼 낀 돌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골목은 흐린 날씨와 어우러져 촉촉이 가라앉은 분위기와 함께 무언지 모를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날 종일토록 우리는 ‘담장 허물기’보다는 골목길이 풍기는 정취와 감동을 이야기했다.

최근 겪은 이러한 경험에서 나는 정취의 고귀함을 배운다. 나는 정취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그것을 느끼는 순간 소중함이 함께 느껴질 뿐이다. 때로는 내가 느끼는 정취의 소중함이 나이 탓인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러한 풍경들을 젊은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과연 그들도 나와 같이 정취의 소중함을 느낄지 알고 싶다.

요즘 우리 학교 곳곳이 새로이 단장되고 있다. 새로운 건물, 멋있는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으며, 경관도 새로워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반기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학교에 오면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경관이 정비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정취가 어떤 모습이어야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학교 박물관 뒤편이나 자작마루가 주는 느낌일 수도 있다. 지난 세월과 사람의 자취를 느낄 수 있으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촉촉하고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면 될 것도 같다.

나이 탓 인가? 나는 다시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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