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와 어느 누군가의 거실에 걸린 ‘모나리자’ 그리고 모나리자₁, 모나리자₂, 모나리자₃……

바야흐로 콘텐츠를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물론 아날로그 시대에도 콘텐츠 복제가 가능하긴 했지만, 그 결과물들은 항상 원본보다 못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복제물과 원본과의 차이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했다. 뿐만 아니라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덕택으로 누구나 방법만 알면 콘텐츠를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복제기술이 보급되던 19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복제기술로 인한 시각예술의 위기를 지적했다. 그는 유일하게 원본에서만 나타나는 고고한 분위기를 뜻하는 ‘아우라’라는 개념을 도입해 사진술이라는 기계복제 기술이 화가의 권위를 상실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진품 ‘모나리자’와 복제품 ‘모나리자’의 차이를 최소화함으로써 문화 수용자들이 이들을 구별할 수 없게 했다. 관람객들은 어디에서도 진품이 풍기는 ‘아우라의 향기’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지난 1월 「탐욕의 과학자들」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과학계 원로들이 과학자의 표절과 같은 부정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펴낸 것이다. 그런데 이달 초,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라는 책을 일부 도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이 각종 리포트와 논문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을 마치 내가 쓴 것인 양 ‘재활용’함으로써 그 글의 복제품인 N₁,N₂,N₃,N₄……라는 또 다른 결과물들을 제조하고 있다.

이렇듯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수용자들의 문화에 대한,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 반면 ‘무비판적인 지식의 복제’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의 향기는 이제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서 행해지는 모방의 모습들은 과연 창조의 어머니로 승화될 수 있을런지. 창조된 것으로부터의 아우라를 느끼고 싶은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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