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31일 밤 광화문. 수십만 명의 인파가 숨죽여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둥둥” 장엄한 타종의 울림이 시작되고 이윽고 2000이라는 숫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함성으로써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반겼다. 곧 이어 밤하늘에 불꽃이 수놓아지며 2000년의 시작을 선포한다. 광화문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빈민 1000만 명, 실업자 100만 명,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실업과 빈부격차. 2000이라는 숫자에 가려 잠시 안 보이게 된 것일뿐 결코 변한 것은 없다. 곳곳에서 ‘실업률이 하락하고 있다, 주가가 상승한다’면서 경기가 회복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만 변했을 뿐 실질적인 경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미 우리 속에 뿌리내린 20:80의 불평등한 사회, 자본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 그 속에서 파괴되는 윤리와 도덕, 돈 때문에 친구와 자식을 죽이는 반인륜적인 범죄가 판치는 사회, 이 모든 것이 2000년에도 계속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2000년이 희망에 가득한 새천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은 다우존스 사상 최대의 폭락으로 새천년의 첫 증시를 맞았다. 우리 나라 증시가 동반 폭락하였음은 물론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막연한 행복이 다시 냉정한 현실로 바뀌어진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지난 세기보다 더욱 불확실하고 냉정한 사회임은 불 보듯 뻔하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새천년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감추기 위한 것일 뿐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그 고통은 멈출 줄을 모른다. 10년 후에는 세계 각국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며,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식량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또한 산림부족으로 인한 환경파괴는 그 가속도를 더해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다. 원유의 고갈로 인해 각종 산업이 마비될 것이며,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추측이 현실로 닥칠 것이다. 이런 때에 새천년의 환상에 젖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새천년이 이미 열흘이나 지났다. 우려했던 Y2K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내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폭탄처럼 이 사회에 존재한다. 우리가 계속 새천년의 꿈속에서 헤매기만 한다면 시한폭탄의 초침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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