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본 대학
지난 해 말에 나온 김동훈 교수의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는 ‘대학 해체론’을 내세우며 대학사회의 부조리에 매스를 대는 궂은 일을 자임했다. 기존의 대학비판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저자가 교수인 탓에 우선적으로 전임교수와 시간강사를 비교, 대조하며 교수사회의 환부를 드러내는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정년을 보장하는 철밥그릇 ‘전임교수제’에 대한 반기가 주요 내용이다. 교수직을 안전한 밥벌이 정도로 생각하고 외부에 자기 이름날리기에 급급하거나 부수입에 연연하는 모습, 남의 논문 베끼기, 학생들의 묵인도 한 몫하는 휴강 등 연구와 강의에 충실한 교수를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행태를 고발한다. 이러한 것은 대학교수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신분을 나타내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 학생들에겐 암묵적으로 정해진 1류, 2류, 3류 대학의 구분에 따라 자신의 장래 신분이 정해지듯 이름 앞에 ‘교수’ 자가 붙으면 사회적으로 무조건적인 프리미엄을 얻는다는 것이다.
시간강사와 전임교수의 강의의 내용과 역량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거의 없는데도 상당한 보수와 대우 등의 차이는 서로를 ‘주종관계’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인격교육을 시킬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내가 보기엔 대학교수의 인격수준은 일반인 수준보다 못하다”며 ‘연구와 강의 외에 성직에 가까운 윤리기준과 역할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또는 운이 좋아서 교수가 되니 갑자기 인격자가 되라는 요구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결국 학생, 교수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배벌해체와 견주어 ‘해체 후 재편’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잉팽창, 비효율성, 재단의 횡포 등의 문제는 상표만 보고 상품을 판단하는 구조를 낳았으므로 대학 중심이 아니라 대학별 핵심 분야 형태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교는 죽었다’에서 라이머는 이러한 방안은 근본적인 해결점이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의 기능 중 사회적 역할 선별 기능, 이론이나 원리 사상 주입기능이 대학에서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어 지배 이데올로기와 대학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사수하기 위해 학교교육을 이용하고 있다. 김 교수가 서울대의 무적 독주 현상의 원인으로 지적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전혀 평등하지도 않는 현실임에도 몇 개의 성공사례는 자신의 노력부족이나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의 부재 쯤으로 원인을 진단하게 하고 이 사회는 신분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유민주국가라는 최면을 건다.
라이머는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교육체제 내의 변화만으론 해결되지 않으므로 외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실천적인 협동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개혁도 표면적으로 나타난 교육계 내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가치보다는 효율을 우선시 하는 경제와 표심에 눈이 먼 정치 구도를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민영화 방안이나 특별회계법 도입, 총장직선제 폐지 등은 결국은 교육철학 없이 재단이사장의 배불리기와 단순시장논리에서 나온 정치경제적 함수관계에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개혁은 단순히 교육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머는 사회 전반적인 가치관의 변화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한국교육의 진로’는 좀더 현실적 접근을 가능케 한다. 초국적 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이미 80년대 이후 세계의 교육 물꼬를 돌려 놓았다. 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케인즈적 교육구조는 삽시간에 거대한 시장논리에 매몰됐다. 이 책은 경쟁이 상호 발전의 열쇠라고 보는 윈윈전략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일부 기득권자들의 교육 독점과 정책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초국적 자본의 힘이 결국 교육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의 상품화 시장화에 반기를 들고 21세기 새로운 진보적 교육사상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함을 피력하고 있다. 먼저는 공교육의 성격상 신자유주의 논리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시장논리에 쉽게 무너니지지 않을 것이며 시장논리에 의한 교육 왜곡과 모순이 명백해 대중 설득이 용이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교육부문은 개별 사안이 아닌 국가 전체적 문제라서 더욱 대응하기 쉽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논리를 주입시키는 교육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데 그것은 민중적 단결에 있다고 본다. 라이머의 ‘실천적 협력’과 일치한다.
자본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민중적 헤게모니로 약화시켜 교육공공성을 강화하고 인간 중심의 공동체 교육, 교육 민주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러한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첨가하고 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발전의 필요조건일 순 있다. 그러나 긴장의 시작이 자본의 배불리기에 있다면 그리고 인간을 배제하거나 조연으로 추락시킨다면 분명 거부해야 할 것이다. 위기라는 문제의식과 그 숙주가 신자유주의라는 것과 서열화 등 내부의 고질적 병폐라는 증거는 확보하고 있지만 치료약이 잘못 투여되고 있다. 이미 수술대에 올라와 있는 대학. 고통을 감내하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불거진 것을 신자유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위험하다. 대학을 안락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정책의 선회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박준규 전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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