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동안 전국의 모든 대학들은 ‘두뇌한국(BK) 21’ 사업 때문에 일희일비했다. ‘BK 21’ 사업이란 교육부가 우리 나라 대학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고급인력 양성을 목표로 소수의 대학을 선정, 7년간 1조 4천억 원을 지원키로 한 사업이다. 이미 지난해 말 그 대상 대학들이 모두 선정됐으며 예산의 일부가 투입됐다.

지원대상에 들어간 대학들은 ‘BK 21’ 선정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파격적 홍보활동을 벌이는 등 한껏 고무돼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대학들은 뒤틀린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BK 21’ 사업에 지원조차 하지 못한 대다수 대학들은 더더욱 풀죽어 있는 모습이다.
각 대학이 ‘BK 21’ 사업에 이렇듯 연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부가 내놓은 1조 4천억 원의 재정지원 약속이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학들은 ‘BK 21’이 향후 대학가에 불러일으킬 파장에 더 신경을 썼다고 볼 수 있다. 이참에 교육부로부터 ‘인증표’를 받지 못한다면 대학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것이다.

이처럼 교육부는 대학을 상대로 ‘막강 파워’를 휘두르고 있다. 교육부가 지나친 간섭과 통제를 일삼고 있다는 비난이 대학가에서 흘러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문민정부’라는 표찰을 달고 등장했던 김영삼 정부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대통령 자문기구였던 교육개혁위원회(현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전신)는 95년 5월31일 제1차 교육개혁안을 발표한 이래 97년까지 4차례에 걸쳐 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개혁안들은 발표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위로부터의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기본 텍스트가 되고 있다.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단기간에 집중 육성하기 위해 성장 잠재력이 큰 소수의 대학을 선정한다’는 ‘BK 21’ 사업의 골자도 다름 아닌 이 교육개혁안에 들어 있던 것이다.
부국강병을 위해 국가차원의 교육개혁 드라이브를 건다는 점에 이견을 달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 개혁작업이 하향식 일변도로 치달았다는 점은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평가를 통한 차등적 재정지원’을 대학정책의 주된 기조로 삼으면서 대학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를 가하고 있다.

교육개혁 추진 우수대학 육성사업, 지방대 특성화 사업, ‘BK 21’ 사업 등 교육부가 지난해 추진한 대학관련 주요 사업은 모두 차등적인 재정지원을 미끼로 하는 것들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교육부 입맛 맞추기에만 골몰해야 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발전계획에 따른 대학 특성화를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17년간 여러 대학의 총장직을 역임하다 퇴임한 어느 노 교수는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권위에 의한 대학통제를 일삼더니 요즘에는 돈에 의한 대학통제가 가해지고 있다”며 “결국 대학들 저마다가 특색 없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으며 차이가 있다면 입시성적에 따른 서열만이 있을 뿐”이라고 씁쓸해 했다.

이 같은 교육부의 대학정책 기조는 ‘이변이 없는 한’ 새천년 벽두에도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어서 앞날을 불안하게 한다. 더욱이 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키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무용론’이 제기되는 마당에 오히려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교육부의 통제 아래에서 입시성적에 따른 서열화 구도를 참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아쉬운 대로 새로운 천년의 희망을 대학들의 자구노력 속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다행히도 대학가 판도에 변화를 재촉하는 움직임이 대학가에서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더욱이 이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작은 대학, 혹은 비 명문대에서 일어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대학’이라는 신조어가 대학가에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내 민주화 역량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등 3개 대학은 지난해 말 국내대학 사상 최초로 ‘민주대학 컨소시엄’을 발족시켰다. ‘민주대학’은 앞으로 대학과 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한 학문적 토대를 제공하는데 주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한 일부 대학이 ‘신개념의 대학원’을 속속 개설하고 있다. 이 신개념 대학원 설립에도 단연 작은 대학들이 앞장서고 있다. 충남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는 올해 재활복지대학원을 신설해서 국내 대학원 과정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장애인 복지, 재활, 치료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키로 했으며 성공회대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대학원 과정에 시민사회단체(NGO)학과를 개설한 데 이어 올해는 협동조합학과를 새롭게 설치했다.

이들 대학의 새로운 시도가 대학가에 파란을 일으키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혁명을 골간으로 사회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 대학의 용기 있는 시도가 빛을 발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신일용
(한국대학신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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