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하경씨 인터뷰

노동작가 김하경씨가 6년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나타났다. <내사랑 마창노련>은 우리 나라 노동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마산, 창원(마창)에서 전국처음으로 지역노조를 결성한 마창노련의 탄생과 해체까지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현 노동운동의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과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조심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그녀는 “운동과 삶은 같은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 삶을 느끼고 삶을 살면서 운동을 하는, 그런 것이 나에게는 소설로서 다가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등단 작가이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나 역시 잘 모르겠다.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노동운동을 하게 된 것이 어찌 보면 신기하게, 또는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떤 특별한 이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가끔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갔고 있느냐’고, ‘돈도 되지 않는 작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 고. 하지만 질문의 답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연민으로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만 해볼 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가진 자에 대한 반발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지 않았을까? 추측만 해본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노동운동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마창노련 말고도 전국에 여러 노련이 있는데 특별히 마창노련을 선택한 이유는

노동운동의 중심을 이야기하면서 울산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생각이라고 보지 않는다. 울산 노동운동은 2개의 커다란 사업장만으로 이루어져있는 반면 이곳 마창쪽은 약 40여개의 사업장이 있다. 마창노련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역노조를 결성하였고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핵심이 마창노련이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연대와 투쟁이 가능한 곳으로 이곳을 지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1980년대 이후 가장 격렬했던 투쟁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로 노동운동의 ‘성지’인 것이다.

마창노련의 설립과 해체를 정리하면서 느끼게 된 노동운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책을 쓰면서 당시 노동자들에게 욕도 많이 했다. “그때 왜 좀더 싸우지 않았냐?”, “겨우 이것 밖에 못했냐?” 등. 전노협의 해산 과정에서 알게된 정파싸움과, 지도부들간의 갈등. 자신들을 믿어준 노동자들의 의지에 보답하지 못한 지도부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운동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련이라는 조직 역시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이 순화하듯 노련의 설립과 해체 역시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마창노련의 해체를 어떻게 생각하나

마창노련의 해체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마창노련의 해체는 ‘발전적 해체’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건설을 위한 긍정적 해체였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해체를 긍정적, 부정적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든 시기이다. 그냥 앞으로 잘했으면 하는 바램만이 있을 뿐이다.

책 곳곳에 나오는 정부의 기만과 언론의 왜곡, 재벌의 횡포가 이제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는 시각이 많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의 기만과 재벌의 횡포가 아직까지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언론이 자신의 색깔을 띠면서 차라리 옛날보다는 나아졌다.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문 독자가 보수적 신문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는 좀더 과감한 개혁을 하여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 나는 재벌 해체를 위해 하고 있다는 ‘우리 사주 운동’에는 반대적 입장에 있다. 재벌이 자사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하고 있는 수단 정도로 나는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돈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이것은 노동자들이 자기이기주의에 빠지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새천년을 맞이하여 노동운동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있다.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방향은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로 노동운동은 폭을 넓혀야한다. 조직이기주의에 빠지면서 10%의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인해 노동운동의 폭이 좁아졌다. 자신의 조직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이것의 영향으로 하청, 영세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그리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 함께 연대해서 투쟁을 해야만 진정한 노동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틀을 정하지 말자.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는 상당히 먼 곳에 있다. 얼마간의 이득에 만족하면 조직은 분열하고 만다. 큰 목표를 세워야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학생들도 노동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학생은 사회에 진출하기전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잠시 공부하는 일종의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학연대 같은 것은 옳지 않은 표현이다. 학생 역시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