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운동의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

더이상 정부는 시민단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98년 동강댐 건설에 대한 환경운동단체들의 반대운동으로 건설교통부는 현장정밀조사에 착수하게 됐고, 같은 해 11월에 참여연대는 약값 폭리사태를 폭로하여 보건복지부로 하여금 약값 인하조치를 취하게 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는 정치개혁연합의 철저한 감시와 질타를 당한 국회의원들이 시민단체들의 참관을 불허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 프로그램도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참여연대는 삼성의 독단적 이사회 운영과 방만한 경영행각에 일침을 가했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인 성취

그러나 87년이래 급속히 성장한 한국의 시민운동은 현재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하다. 박영준(동아대 사회학) 교수는 “90년대 초에 비해 시민운동의 참신성, 도덕적 우위, 국민적 설득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고, 시민운동 내부의 갈등이나 내부비판도 점증하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해 7월 비민주적인 조직운영에 반발한 ‘경실련개혁추진모임’의 도덕성과 순수성 회복 요구와 녹색연합 장훈 사무총장의 자기비판은 박 교수의 우려가 표면화된 사례이다. 많은 전문가들과 현장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지적과 비판이 비단 몇몇 단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한계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의 시민운동이 과연 그 문제점을 극복하고 제 역할을 할 것인가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의 경로수정이다. 현실사회주의 붕괴가 가져온 노동운동, 학생운동 따위의 사회주의운동의 공백에 서구의 시민사회론과 신사회운동론의 유입이 치고 들어왔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수용에 대해 유팔무(한림대 사회학)교수는 한국에서의 시민사회는 시간과 공간의 압축을 통한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인 성취’라고 해석하면서 “한국의 시민운동이 경제적 급속성장과 정치적 후진성, 전통, 현대, 탈현대 등 문화적 혼합 상황을 기반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경제적 압축성장과 무관하지 않은 시민운동의 단기간 성장은 결국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실련, 참여연대 등 1만 여 개에 가까운 시민단체들은 양적인 팽창에는 성공했지만 질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시민이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역설은 한국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잘 드러내고 있다.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할 시민단체가 거대화되면서 상명하달식의 비민주성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소수의 전문가와 상근 활동가 중심의 사업진행, 조직활동보다는 홍보 활동 중시, 단기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명망가 영입 등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왔다. 노조 가입률은 10%선이고 중산층의 시민운동 참여도는 더 저조하다.

조직의 거품 불리기는 결국 중앙집권적 전문가 조직을 양산했다. 경실련도 조직의 거대화가 만들어낸 관료주의적 비민주성때문에 도덕적 치명상을 입었다.

시민운동은 정계진출의 발판(?)

또한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시민운동 출신이 정치권에 진입하는 데엔 시선이 곱지 않다. 80년대 이념운동과 계급주의적 운동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시민운동이 주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개입해 ‘정책대안 제시와 정부 견제’라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측면은 상당부분 설득력을 갖는다. 시민단체는 비정파적이지 비정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을 정치적 야심의 발판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다. 정부의 정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실질적 개혁을 이뤄낼 수 있지만 개혁이 실패할 경우 시민단체의 위상에 금이 가고 결국 시민단체의 정체성이 약화된다. 경실련 출신 인사의 정부내 진출이 경실련을 친정부단체로 인식하게 한 점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백화점식 운동

주요시민단체들이 사회정치적 중요사안에 대해 거의 모두 개입하는 ‘백화점식’ 운동도 문제다. 이러한 종합적 시민단체는 상근자 증가와 조직 비대화를 낳고 운동의 기동성을 떨어뜨려 관료주의의 맹아가 싹틀 환경을 만들었다. 특정 사안에 집중하는 서구 시민단체에 비해 전문성이 결여되는 맹점도 안고 있다. 한국 사회의 중앙집권적 문화를 고려하여 중앙 중심의 종합적 시민운동의 불가피론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시민단체협의회 서경석 사무총장은 “특정과제에만 관심을 집중하면서 사회의 큰 방향에 침묵하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이 적다”며 분야별 전문화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들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종합시민운동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부터 현실화시켜야 할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독립운동

무엇보다도 문제되는 것은 재정이다. 시민단체의 생명인 정치적 중립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주요재원인 회비와 후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1년 소요 경비가 환경운동연합 10억원, 녹색연합 6억 5천 만원, 참여연대 4억 원 수준이지만 회원들의 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지나지 않는다.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교수는 현 상황에서의 시민단체운영을 ‘기적에 가까운 독립운동’이라고 표현했다. 녹색연합은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정부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반성했다. 경실련은 지난 해 1억 5천만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부족한 재원 채우기에 고심하면서 결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프로젝트 참여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간접지원, 의사소통시스템 필요

사실 재정적인 문제 해결이 시민운동의 가장 어려운 숙제다. 미국 등 시민운동이 활발한 나라에서는 지원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일본도 비영리단체법을 제정하여 지원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의 민간운동지원법에 따른 ‘민간운동지원기금’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관변단체로의 전락을 우려해 상당히 꺼리고 있다. 한국NGO연구소 김광식 소장은 “우편요금, 통신요금 인하 등 간접지원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이래 환경단체에 한해 주고 있는 세금 혜택 등을 확대하고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폐지하여 시민단체들의 모금행위를 허용해야 우선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개입이 차단된 지원과 함께 시민단체의 정체성을 유지할 대안은 회원 확보다.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참여도는 낮다. 운동에 대한 의식공유와 적극적인 회원모집방안 강구가 필요하다. 재정 및 활동실적에 대한 투명성 확보와 중앙집권적 구조의 거품 제거를 통해 주민참여형 시민운동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여 순발력있는 의사소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제연대 강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작년 세계NGO대회를 계기로 세계시민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교류와 여론형성을 위한 연대 활동을 강화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이 고스란히 시민운동의 핵심으로 이동한 사회 변혁의 경로수정이 새로운 시험대에 올려졌다. ‘사회주의의 변질’이니 ‘결국 올 것이 왔다’느니 하며 시민운동의 한계를 필연적인 것으로 규정하려는 비판도 있다. 과연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인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대안 없는 자본주의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 만한 대체 이데올로기의 부재를 과연 시민운동이 담당할 수 있을 것인지 타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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