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코카콜라 애인』의 자취를 찾아

윤대녕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헤매어 보았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탈출’을 바라는 감상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그의 소설이 독자들을 이렇게 헤매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의 소설에 지명(심지어 그곳에 가는 방법까지)들과 가게 상호들이 자세하게 소개되기 때문이다. 1999년 6월, 창작집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를 발표한 이후 윤대녕은 1999년이 끝나기 전에 『코카콜라 애인』이라는 그의 네 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나 또한 무언가를 바라는 심정으로 『코카콜라 애인』의 궤적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에는 항상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의 모습과 어디선가 갑자기 날아온 일상을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개(과거의 지우지 못한 기억이나 어쩔 수 없이 관계되어버린)에 대한 이야기. 윤대녕은 항상 그 후자에 비중을 둔다. 윤대녕 또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다. 일상이라는, 우리들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게 작용하는 힘으로부터의 탈출을. 그는 항상 그 탈출구를 자기 안에서 찾는다. 그의 소설에 이렇게 등장하는 탈출구는 약간은 환상적이긴 하지만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다른 현대 소설들과의 차이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코카콜라 애인』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구해준 여인, 장진화와 만난 ‘화훼전시회’가 열렸던 COEX에 가 보았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과자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소설에서와는 다른 활기를 느꼈다. 아이들의 살아있는 모습, 생명력 같은 것을 말이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새떼’를 본 듯한. 생활이란 항상 그렇게 열려있는 것이다.

COEX에서 마포로 가는 도중의 지하철에서 소설 속의 보이지 않는 힘이 덮쳐왔고, 나는 지하철 창 너머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돌이라도 던져주기를 바랬다. 마포를 처음 가보는 나는 윤대녕의 소설책 하나를 마치 지도인양 손에 쥐고 무작정 나아갔다. 마포 의료보험회관으로 가는 건널목에서, 나를 기다린 듯,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접촉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는 마포 의료보험회관 앞에서 일어난 『코카콜라 애인』의 ‘김현필 사고’를 떠오르게 했다. 그로 인해 소설 속의 많은 것이 다시 살아났다.
마치 사막 속의 신기루같이 까페 <말리부>는 ‘마포 의료보험회관 건너편에’ 실재하고 있었다. 내부는 소설 속의 짧은 묘사와 같은 형상을 한 근사한 까페였다. 이제부터는 확신이 생겼다. 분명 ‘불교방송국 건너편에’ <재즈>라는 까페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또 <재즈>를 발견했고, 그 곳 어딘가에 윤대녕이 앉아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왜 윤대녕은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배경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 또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님 자신뿐만 아닌 모든 현대인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지만 윤대녕이 제시하는 탈출구는 어렵다. 그도 역시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열반’을 원하는 것 같다. 자아(이상)와 현실과의 합일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는 외로움과 일상에서 풍겨져 나오는 냉담함의 해소를. 『코카콜라 애인』에서 가장 완전한 존재가 되는 장진화도 알 수 없는 고독에 싸여있듯이 말이다.

‘… 모두가 외로운 짐승들뿐이었다. 그들과 지루한 싸움을 하며 차례차례 힘겹게 헤어졌다. … 그리고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잊고 있던 친구와 만나듯 낯선 나를 다시 만났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 이제 헤어지지 않으련다. …’- 『코카콜라 애인』 작가 후기 中 -
윤대녕은 10년 넘도록 무언가를 찾고 있다. 우리도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계속 그를 읽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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