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규기자의 해외탐방 마지막 이야기

“저기 한국사람입니다.” 니스 해변에서 갓 돌아와 피곤과 땀이 범벅이 된 상태라서 우연히 만난 한 배낭족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기도 귀찮았다. 유럽에 한국사람 있는 게 뭐 대단한 거냐고 시큰둥하게 쳐다보았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패션이 쉽게 한국인임을 알아보게 했다.

한낮의 더위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저녁 9시나 되어야 넘어간 햇빛의 잔영마저 어둠에 점령당할 때쯤 우리는 숙소를 나와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단국대 영문과의 한 학생은 영어에 능숙치 못한 한국인이 외국인들에게 멸시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며 분노를 금치 못하더니만 금세 호텔팩으로 화제를 돌렸다.

과소비에다 유럽에 오면 각 나라의 특산물은 하나 쯤은 사거나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고, 편안하게 여행사에서 정해주는 코스에 따라 움직여서는 밤이면 또 정해준 호텔에 제집찾듯 몰려드는 호텔팩. 이에 비해 배곯아 가며 오직 발바닥 하나만을 의지하면서 숙소예약, 숙소찾기, 표 예매, 확정, 스케줄 짜기 등 홀로서기가 진정한 유럽여행이 아니냐는 것이다. 배낭여행 예찬론자였다.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배낭족들은 숙소 예약하고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다. 물론 그 과정이 전혀 무의미하진 않지만 유럽 문화에 대한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불안한 마음과 무게를 더해가는 배낭이 도리어 여행의 기를 꺾을 수 있다. 적은 지참금과 부족한 수면 등은 사서 고생하는 축에 속하긴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한국인에 대한 불만이 몇몇 사람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얼마 못 가 발견하게 되었다. 헝가리니 프랑스에서 만난 한국인들도 서로에게 약간은 반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봐서 ‘반갑다’고 인사하면 퉁명하게 받아치곤 돌아서서 ‘또 한국인이야?’하는 게 씁쓰름했다고 하는 학생도 있었다.

왜 그럴까. 한 학생은 ‘해외로 나올 땐 큰 맘 먹고 나오는데 와 보니 한국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권의식? 누구나 하는 것은 싫다는 것. 그러나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운 거지요. 한국인들은 자문화중심주의가 너무 강해서 외국의 문화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나는 이 말에 반쯤만 찬성한다. 우리문화에 함몰되었다기 보다는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고 오히려 상대적인 문화 빈곤감이나 필요이상의 유럽문화 우월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호텔팩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폴리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호텔팩’ 2명을 만났다. 성신여대 서양학과의 여학생과 우리 대학 경영학과의 남학생이었다. 여학생은 전공에 맞게 미술테마여행 중이고 남학생은 햄버거와 맥주 투어라고 농담을 섞었다. 조그마한 손가방과 사진기는 나의 커다란 배낭을 더 무겁게 만들었지만 테마여행을 위해서는 호텔팩과 같은 방법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족들에 대한 거리감도 없었다. 남학생은 “우리 대학에서 호텔팩은 좀 사치스러운가요?”하며 머쓱거렸지만 굳이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1달 반의 해외 나들이를 접으면서 우리 나라를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것은 단순히 고국에 대한 향수가 아니었다. 유럽을 치장하고 있는 역사라는 것이 우리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미친 것이다. 타이항공기가 귀국 활주로에 미끄러져 내려올 때 드골공항에 비해 너무 초라한 김포공항의 행색에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기다릴 몇몇 사람들의 얼굴로 덮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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