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학들이 앞다투어 ‘졸업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조선대는 작년부터 학점 3.7, 토익 750점 이상인 학생에 한해 ‘백악장제’를 수여하는 졸업예정자 학력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2천년 신입생부터 영어와 정보화 과목을 신설, 영어의 경우 토익 730점, 토플 550점, 텝스 638점 이상을 받아야 학점을 주며, 정보화 과목은 정보처리기사·정보검색사·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따거나 국가공인 민간시험을 통과해야 학점을 부여한다. 이 밖에도 많은 대학에서 토익 몇 점 이상, 자격증 취득 등을 졸업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 2월에 발표한 중장기발전계획안을 보면 ‘성적 상대평가제도 도입’, ‘1학년 유급제도 도입’, ‘토익·토플 등이 일정 점수가 넘어야 졸업 가능’ 등의 항목이 나와 있다. 또한 교무과에서는 얼마 전에 “전체 수강인원의 50% 이상 B+를 주지 못하게 전산처리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공문을 교수들에게 전달했다.

졸업인증제 도입취지에 대해 전남대의 송인성 기획연구실장은 “국제화·개방화 시대를 맞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인 만큼 최저 기준선을 제시해 학생들의 능력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졸업인증제 도입이 학생들의 능력향상이라는 등식은 다소 문제가 있다. 졸업인증제의 도입으로 영어능력 등의 향상은 다소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전공과목에 대해서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전공과목은 잘 못해도 자격증이 있어야 졸업할 수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당연히 영어, 컴퓨터 등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또한 교양과목 중심의 교육은 대학의 취업양성소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컴퓨터 자격증 취득, 토익점수 향상 등이 대부분 학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천편일률적인 기준의 도입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억누를 가능성이 높다. 같은 학과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희망하는 직업이나 일하는 분야에 따라 요구되는 능력이 다르다. 토익점수라고 하더라도 직종에 따라 점수차이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성균관대의 경우 96년에 어학, 전산, 사회봉사에 대한 일정수준의 자격을 갖춰야 하는 소위 ‘삼품제’를 도입했는데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22명이 졸업하지 못했다. 이들 중 몇 명은 대학을 상대로 서울지법에 소송을 냈다. 충남대의 경우도 ‘무학점 졸업 인증과정’을 통과하지 못해 3명이 졸업하지 못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대학이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단순히 기업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학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이 목적인 졸업인증제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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