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본질과 성격을 되묻는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80년대 말까지는 무관심이나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1992년 런던대학의 생의학 교수인 루이스 윌퍼트로부터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는 좪과학의 비자연적 성격좫이라는 대중과학서에서 과학은 상식적 지식과는 달리 특별하고 우월한 지식이며,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과학을 이해하기 어렵고, 이러한 몰이해로 인해 과학에 대한 상대주의적 관점이 팽배하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다음 해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가 좪최종이론의 꿈좫을 펴내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의 주장은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며, 과학에는 여타의 사회 문화적 요소가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회구성주의 과학사회학의 시조격인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는좪골렘좫을 통해 논쟁적인 과학의 이론과 실험을 분석하면서 이런 예들이 과학의 사회적, 문화적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만큼 과학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편 1994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폴 그로스와 수학자 노만 레빗이 「고등미신」을 펴내면서 사회구성주의자, 포스트모더니즘 과학론자, 페미니스트 과학론자 등의 주장은 모두 과학에 대한 무지와 의도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과학의 이론은 진리이며 자연의 객관적 실재를 기술하고 있다는 상식적인 실재론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좪고등미신좫의 비판의 대상이었던 저자들의 반론을 모은 『Social Text』특집호가 ‘과학전쟁’이라는 제목 하에 1996년 봄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뉴욕대학의 수리물리 교수인 앨런 소칼의 『경계 넘나들기: 양자중력의 변형적인 해석학을 위해서』라는 야릇한 제목의 논문이 들어있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현재 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양자중력이론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과학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는데, 책이 출간된 직후 자신의 논문이 엉터리 날조에 불과한 것이라고 폭로하여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소칼의 날조’ 이후 소칼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에서부터 방법에 대한 비판, 『Social Text』는 과학사회학의 주류가 아니며 이 실수를 악용하여 과학사회학 전체를 공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항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소칼을 칭찬하는 논문을 발표한 와인버그에 대해 비판을 가한 과학사학자 노턴 와이즈가 1997년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 사회과학스쿨의 과학학 교수직에 추천되었으나 와인버그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임용을 저지한 사건이 발생했다.
‘와이즈 사건’이라 불린 이 일로 학계는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한편 이 해에 소칼은 벨기에 루뱅대학의 장 브리크몽과 함께 프랑스에서 좪지적 사기좫라는 책을 펴내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과학 용어들을 피상적으로 파악하여 부적절하게 사용하거나 무의미한 말장난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여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들끓게 했다. 이 논쟁은 양국 지성계의 자존심 대결로까지 비화되어 과학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결국 과학의 성격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들은 과학과 사회·문화의 관계, 그리고 과학적 지식의 성격이라는 쟁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회나 문화가 과학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지식사회학의 주장에 대해 과학자들은 과학활동이 사회적 활동임을 인정하더라도 과학의 내용, 진리는 사회의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쟁점은 바로 과학적 지식의 성격에 관한 논의와도 관련된다. 과학지식사회학 진영은 과학적 지식이 관찰을 통한 확고한 경험에 바탕을 둔 사실적 지식이고, 이를 기반으로 철저한 논리에 입각해 추리해낸 보편 타당한 지식이기에 여타의 지식들에 비해 더 우월한 지식이라는 과학자들의 기본적인 믿음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과학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논쟁은 1998년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져, 교수신문을 통해 과학기술사회학을 전공하는 국민대학교의 김환석 교수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의 오세정 교수 사이에 과학의 객관성과 사회적 영향을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었다. 반박에 재반박을 거듭하며 각자 세 편씩의 글을 통해 자신의 과학론을 전개해 나간 이 논쟁은 상대의 입장 차이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과학학의 저변이 그리 넓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과학자와 과학학 연구자간의 적극적인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 논쟁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문만용
(자연과학개론 강사)
서울시립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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