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근래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직장에서의 남녀차별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금녀구역 또한 법적.제도적으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의 활약상이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졸여성들의 취업문은 한없이 좁을 뿐만 아니라 취업 후에도 상위직으로의 진입 장벽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다. 여성의 능력 발휘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법적 규제보다 가부장제 시대의 억측과 편견에 얽매인 남녀의 고정된 성 역할을 강조하는 남성들의 의식이다.

대졸여성의 경제활동율이 OECD가입국 중 꼴찌에 가깝다든가, 정부투자기관의 과장 이상 직급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를 넘을까 말까 한다는 통계를 구태여 들이대면서 따지고 싶지 않다. 이제 낡은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되자.

나는 현대의 젊은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당당함’을 꼽고 싶다. 주위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가 자신과 남에 대해 당당해져야 한다. 적당한 예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의 많은 직장에서는 여성이 임신을 하면 퇴직 일순위가 된다. 직장에서 주는 눈치에 익숙한 여성들은 임신을 하면 알아서 사직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한다. 보통의 서양 여성들은 임신을 하면 더욱 당당해지고 생활에 자신감을 얻는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자나 뉴스 앵커들도 출산하는 날까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을 흔히 보았다. 몸이 허약해져서 일에 차질을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한 여성이라도 당당하고 건강하게 직장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여성이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스스로 제약을 두면 한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자아 성취는 결코 이루지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당당함은 여성 혼자의 힘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혼자 아무리 당당하고 싶어도 사회 또는 직장 생활의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이 소수를 동등하게 인정해주지 않으면 이 당당함은 지키기가 어렵게 된다. 이는 미국에서 흑인들이 아무리 당당하게 살고 싶어도 백인들의 의식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그리고 장애인들이 아무리 당당하고 싶어도 정상인들이 그들을 외면하는 한 그들이 사회를 바꿀 힘이 없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외국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는 흔히 우리 나라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현지 적응을 잘 하는 것을 본다. 이 현상을 두고 우리 나라 남성들이 남성 우월적 사회에서 다수로 사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소수 민족의 일원으로 생존하여야 하는 소수의 어려움을 참지 못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나라 남성들의 폐쇄성을 부각하고자 함이 아니라 누구든지 때에 따라서는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성 차별의 문제를 보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논의하여야 할 시점에 와있는 것 같다.

문영인 교수
(영어영문/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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