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위문화

“교육재정 GNP대비 6% 확보를 위해 저희는 가두행진에 참여했습니다.” 가냘프지만 사뭇 진지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10여명의 이화여자대학교(이대) 학생들은 시민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큰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한편 이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150여명의 이대 학생들이 학생회장으로 보이는 듯한 학생의 지휘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가두행진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민중가요를 부르며 멋진 문예선동을 보여 주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이 다른 대학 학생들 뿐만 아니라 거리의 시민들까지 하나로 만들고 있는 순간이었다.

과거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던 시위에서 벗어나 시민들 속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전경도 빵을 먹는다?

서울역에서 시작하여 평화적인 거리행진을 하던 시위대들은 종각역 쪽으로 접어들자 대기하고 있던 전경과 폭력적인 마찰을 일으켰다. 이런 급박한 대치와 충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잠잠해졌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위대와의 충돌에 대비하여 전경들은 건물 앞 나무 아래에 숨은 채 앉아 있었다. 어둠이 짙어질 무렵 한 대의 차가 와서 앉아있던 전경들에게 빵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빵을 받아 들고 한구석에서 먹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에서 순간 노동자의 모습이 엿보였다. 빵 조각으로 비유될 수 있는 삶을 타파하기 위해 투쟁하러 나온 노동자들을 저지하고 방어하는 강력한 전경의 모습에서 노동자 모습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노동자의 아들

4월 29일 2시 노동자대회를 위해 2만여명의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뜨거운 햇볕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각 회사의 노동조합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들은 각자의 요구사항을 내걸고 결의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한다는 내용과 불법해고를 반대한다는 내용 등의 요구사항이 적힌 피켓을 든 노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 어느 노동자가 아들인 듯한 아이를 목마 태우고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이마에 ‘주 40시간 근무’라는 구호의 빨간 머리띠를 매고 있었다. 그 아이가 노동자대회가 무언지 알고 여기에 왔을까? 30년 후 그 아이가 또다시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노동자대회에 오지는 않을까? 그 때에도 그 어린아이는 ‘주 40시간 근무’란 띠를 매고 노동환경개선을 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싸움은

메이데이 참가자들은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뒤 곧바로 종각까지 이어지는 가두행렬을 시작했다. 행렬은 종각역 부근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다. 종각역 부근에는 검은 헬멧을 쓰고 검은 방패와 진압봉을 든 전경들이 빽빽하고도 길게 대로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아님에도 그 부근을 지나는 행렬은 왠지 술렁이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 행렬은 멈춰졌고 전경들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대열의 모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열은 거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대열 앞으로 나왔고 어디 선가 각목들을 가지고 왔다.

몇몇 사람들은 길가에서 벽돌을 빼내와 아스팔트 위에 마구 내리치며 깨기 시작했다. 앞에선 사람들이 돌을 집어들고 전경들과 대치할 태세를 취했기에 분위기는 곧 험악해졌다. 지나가던 시민들 뿐만 아니라 행렬에 참가한 학생들 대다수도 뜻밖의 상황에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구경하기 위해 차도 쪽으로 몰려든 상태에서 급작스레 접전이 벌어져 적잖이 위험했을 뿐 아니라 거리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학생들이 돌을 던지자 달려오기 시작한 전경들은 마치 검은 파도처럼 학생들을 뒤로 밀어냈다. 곧 거리는 시민과 시위자들이 뒤섞이고 학생들은 전경과 뒤엉켜 싸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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