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 큰 이야기- 시간 강사

박사과정에 있거나 과정을 이수하고 논문을 준비하는 예비교수들의 모임이었다. 이름을 물어봤다. 이름을 밝히지 말기를 요구해 왔다. 오늘의 대화가 가히 유쾌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평소엔 보통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5∼7년 정도의 사람들이 대여섯명 모이지만 그날은 3명만 만날 수 있었다. 모두 국내대학의 박사학위를 받을 계획이었다. “학교들마다 해외 박사들만 찾지 않나요?” 처음부터 너무 공격적인 질문을 한 듯했다. “그렇죠. 자신이 해외대학학위를 받았으니까요.”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다. 각 대학마다 대학원이 있고 그 대학의 교수들은 많은 제자들을 양산한다. 교수들이 신임교수를 채용할 때 국내대학박사를 기피하는 것은 자신이 가르치는 교육의 수준이 낮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국내든 국외든 기본적인 질은 같아요. 하지만 외국의 대학원 교육시스템이 질을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맞아요.” 결국 교수도 외국처럼 높은 강도의 교육을 시킬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자기네 학교출신 교수를 뽑는 것은 대학원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에 지나지 않다.

구조적인 문제에 닿으니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학원을 특성화해야 한다”는 등 현실과 괴리된 대안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시간강사의 푸념으로 이어졌다. “월급을 딱 두 배만 올리면 됩니다.” 현재 시간강사의 월급은 3학점에 20∼25만원이다. 그렇다고 입시학원에 가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한다. “일종의 외도인 거지요. 내가 왜 여기서 10년 전에 봤던 입시책을 보며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적은 월급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여러 강좌를 맡게 되고 실제로 강사들이 연구할 시간을 잃게 되고 외모도 여의치 않아 이중고에 허덕이게 된다.

“이번 학기 시작 1주일 전까지 하기로 했던 과목이 갑자기 취소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동료의 사례를 들어 시간강사 생활의 단면을 설명했다. “3시간 강의를 2시간, 1시간으로 나눠 놓으면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더 걸려요.”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그것은 수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수업 준비할 시간을 오가는 데에 소비하다보면 강의의 질이 더 떨어지죠.” 강의의 질 문제가 나오니까 서로 할 말이 많은가 보다. “땜질하는 경우가 많아요.” 강좌를 맡을 사람이 없는 경우 개강 며칠 전에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과목에 연연하지 않는다. 강사의 경우 대부분 개론수준이므로 거의 모든 전공을 하게 된다. “강사실이 없는 곳도 많아요.” “학생들을 맡겨놓고 학교는 전혀 신경을 안 쓰지요, 물론 그게 편하지만.” 결국 강사에 대한 대우가 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일 게다.

기나긴 이야기를 정신없이 내어놓다가 갑자기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자신들에 대한 정체성에 언뜻 회의를 느낀 것일까. “그래도 저희들처럼 강좌라도 있으면 배부른 겁니다.” 자위하는 것 같으면서도, 말로 할 수 없는 나머지가 이 한마디에 묻어 있는 듯 했다.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강사 생활하시면서 나름대로 보람있었던 일도 있었을 텐데요.”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점을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통과의례에 참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강사이기에 더 강의가 좋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보람을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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