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문화체험- 영화 ‘존 말코비치되기’를 보고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잠깐 동안 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아니 완전히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공상이다. 이런 소재가 영화로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늦은 밤 단성사의 마지막 프로를 보러간 나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머리가 매우 복잡했다. 이해할 수 있을 듯 이해할 수 없는 영화의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나는 것은 짬뽕,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반칙왕’ 그런 것들이었다.

실명의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가 영화제목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웃기는 짬뽕이 아닌가? 아마 우리나라에서 패러디를 한다면 ‘안성기 되기’ 정도가 될 것이다. 짬뽕에 들어가 있는 온갖 해물처럼 감독은 관음증, 동성애, 성전환, 무기력, 자의식, 영생 등 온갖 것을 영화에 쏟아 넣는다. 그리고 뜨겁고 얼큰한 짬뽕 국물이 처음으로 위 속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속쓰림 같은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느껴졌다(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그릇의 푸짐한 짬뽕을 먹고 나온 듯한 기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시계를 보면서 “늦었다. 늦었어!”를 연신 외치면서 뛰어가는 토끼를 앨리스가 뒤쫓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인형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무능력한 크레그가 레스터회사(이 회사는 신기하게도 7과 1/2층에 위치해 있다)에 서류 정리할 사람을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회사에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그는 회사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이상한 나라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나라 안에서 접하게 되는 또 다른 이상한 나라. 바로 첫눈에 반한 맥신이라는 여자와 존 말코비치가 될 수 있는 통로이다. 여기서부터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되고 보고 있는 우리조차 정신을 못 차릴 정도가 된다.

그리고 ‘반칙왕’. 낮에는 무능력한 은행원이 밤에는 프로레슬러가 되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반칙왕’,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도 크레그는 무능력하지만 존 말코비치가 되면서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자기를 찾게 된다. 물론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극단적인 대비를 보이면서 하나는 코미디로 다른 하나는 블랙코미디로 끝을 맺지만, 어쨌든 두 영화는 이야기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과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얘기를 하려고 했을까? 주인공을 인형술사로 정한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할 것 같다. 크레그가 말코비치가 되면서 그 꼭두각시를 잘 조정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 너무나도 무기력한 인물을 말이다. (크레그와 말코비치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리고 천장이 너무 낮아 구부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7과 1/2층의 설정 또한 무기력한 그가 이미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일그러져 버린 크레그, 아니 현실의 우리를 투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무기력한 그가 일그러진 공간에서 말코비치가 될 수 있는 통로를 통해 말코비치가 된다는 것. 현실에서 요행만을 바라는 모습은 너무나 편하게만 살려는 우리를 꼬집어 내는 것일 게다.

이 영화는 아마도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큰 책임이 뒤따르는지를 보여주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는 경고성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이 외에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카메론 디아즈의 화장기 없고 빗질도 하지 않은 망가진 모습, 카메오로 출연하는 찰리 쉰,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압권인 존 말코비치 스스로 자신이 되는 통로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기이한 장면.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박왕희(국사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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