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비」와 「창비」가 말하는 ‘교육’과 ‘시민운동’

학원강사, 외국인 대학교수,고등학교 선생님 등 일선현장에서 뛰고 있는 그들이 풀어놓은 교육. 그 속에는 우리사회 구조속의 모순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주류 이데올로기에 따른 공교육의 황폐화를 경계하면서도 주류 사회에 편입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이런 현상은 작년 ‘두뇌한국 21사업’에서도 나타났다. 4.19 이후 최초라는 교수들의 대규모 집회. 하지만 두뇌한국 21 사업은 각 대학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일부 상위대학이 주요사업을 독점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결국 대학간의 차별적인 지원을 미끼로 경쟁을 야기하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대학은 스스로 인정해 버리고 만 셈이다.

공교육의 위기는 비단 대학뿐만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과외 위헌 판결에 따른 과외 시장의 활성화, 조기유학의 붐, 학교의 위기 등 교육 전반적인 부문에서 나타난다. 이는 단순히 교육예산의 확보를 통한 공교육의 활성화라는 단순한 처방으로 극복되지는 않는다. 한 논술학원 강사의 말처럼 오늘날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쪽집게 과외선생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들으면 성적을 올릴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더라도 한국에서 교육받느니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편이 낫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생각이다. 어느덧 과거에 존경받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는 감시자로, 관료들에게는 교육개혁을 제대로 수응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현실에 대해 「당대비평」, 「창작과 비평」모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는 교육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교육의 근본적인 속성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결코 일회적인 구호 속에서 해결될 수 없다. 도정일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과)의 지적처럼 언론에서 들끓으면 잠시 예산이 확충되고, 그 뒤에는 잠잠한 일년지계의 발상으로는 교육문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결국 문제해결의 시발점은 교육의 공공성의 확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당대비평」은 말하고 있다. 이는 바로 지식권력 계층이다.

대중성을 외치면서도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는 학생운동권, 사립대학의 비리를 눈감아 주는 부패한 관료, 자기이권 챙기기에 바쁜 대학당국과 교육부. 이들 모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무기로 대학의 진정한 개혁이 아닌 자신의 터널속에만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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