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왔다. 반목과 대립을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세기 동안 갈라져 왔던 겨레의 숨결과 핏줄을 이어주는 역사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역시 없다.

가족과 헤어져 애절한 만남의 기다림을 안고 살아온 이산가족이나, 반공과 방첩, 간첩신고 등을 교육받은 세대들, 그리고 실제로 총과 칼을 맞대고 있는 군인들, 그 어느 누구도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에 깊게 드리운 냉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평화와 신뢰에 기초한 남북통일의 초석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컸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7.4남북공동성명, 남북적십자단 방문과 예술단 방문, 남북기본합의서체결, 금강산 관광 등은 눈앞에 성큼 다가온 통일이 곧 손에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의 의사대로 또는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핵문제니 경수로 건설이니 북미합의니하는 것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더니 급기야 4자회담이 제의되기도 해 우리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했고 잠수함 침투,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은 통일이 또 다시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가슴을 쓸게 했다. 6월 12일이면 형식이야 어떻든 우리민족의 통일문제를 남북한 당사자들이 만나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도 큰 업적이자 발전이다.

따라서 이번 첫번째의 정상회담에서 너무 많고 너무 큰 것을 얻으려해서는 안된다.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先易後難(선이후란)”, 즉 쉬운 것부터 해결하라는 것이다. 우선은 양측이 원하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나 다음 만남에서는 무엇을 더 논의할 것인가 정도만 합의해도 큰 성공이 아닐 수 없다. 둘째, “先經後政(선경후정)”, 즉 첨예한 정치·군사적인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북한이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거처럼 원조나 도움을 주면서 대가를 요구하는 상호주의는 금물이다. 셋째는 “先廣後狹(선광후협)”, 즉 구체적인 문제보다는 포괄적이지만 시급한 것, 이를테면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넷째는 “先實後名(선실후명)”, 즉 명분보다는 실리적인 면에서 합의를 도출해나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지나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할 경우 또 다른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휴전선 양측에서 화해와 대화, 그리고 협력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적대적 대결과 반목의 상태에서 공동번영과 협력의 상호의존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두 체제가 통합과 하나됨을 이룩한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의 잔재를 없애는 한국인의 위대한 역사적 승리로 기록될 수 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현정권의 정책의 성공만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질서의 변화와 이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발빠른 대응의 결과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개방과 변화만이 북한의 고립과 낙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구질서를 버려야 한다는 지도부의 인식전환에서 기인한 것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남북정상간의 만남과 통일과 협력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다고 해서 이 것이 곧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끝나고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주변국가들이나 강대국의 이해나 전략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금희연 교수
(국제관계/국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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