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공간, 지하철

타인으로부터의 무관심과 그들에 대한 알 수 없는 경계심은 지하철 내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지금까지 지하철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해주는 교통수단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는 피곤한 공간이자 소외의 공간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이러한 지하철이 새로운 의미에서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오후 5시 30분 2호선 을지로 입구역 만남의 광장에서 막을 올린 ‘서울지하철 예술무대(subway theater)’가 그것이다. 일상생활공간인 지하철 역사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취지로 추진되어 온 지하철 예술무대는 서울지하철공사(이하 공사)가 공연예술기획사인 이일공(대표 윤성진)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부족한 공연장을, 시민들에게는 문화공연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라 할 수 있다.

지하철 예술 무대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을 중심으로 상설공연을 하고 있으며, 달마다 주제를 달리하는 기획공연이 1년 내내 마련되어 있다. 공사는 지난달 19일부터 을지로 입구역(2호선), 시청역(1호선), 종로 3가역(1, 3호선) 등 10개역을 선정, 시범 운영한 후 이른 시일 안에 서울시내 115개 역사에서 서울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연모집 방식은 지하철 승객과 호흡하기를 원하는 문화예술단체나 예술인, 일반시민, 학생 등의 신청을 받아 서류 심사와 분야별 전문심사의원에 의한 간단한 오디션을 거쳐 지하철 예술인을 선발하게 되며, 공연내용은 연주, 무용, 연극, 마임, 퍼포먼스 등 장르 제한이 없다.

그러나 상업적 홍보 및 광고를 목적으로 하거나 유료 공연을 희망하는 공연자 및 공연단체의 공연은 금지하고 있다. 공연이 승인된 개인이나 단체는 명패(subway theater artist)를 발급받게 된다.

지난 달과 이번 달에 참가한 지하철 예술인들은 에콰도르 민속공연단 SISAY, 조박댄스컴퍼니, 창무회 등의 프로팀들도 있었지만, 할아버지 6인조의 그린실버밴드, 요들송 클럽, PC통신의 아카펠라 동호회, 교회의 탬버린 무용단, 프로를 꿈꾸는 대학생 예술가 등 아마추어와 인디밴드가 대부분을 이룬다. 이들은 지난 4월 공개 모집을 통해 서류심사와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팀들이다.

이들 공연에 대한 지하철 승객들의 호응과 관심은 기대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3시 30분 종로 3가역 3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는 이동통로 구간에서 이루어진 5인조 그룹 에콰도르 민속 공연단의 공연은 그곳을 지나가던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베이스 기타와 피리, 그리고 이색적인 악기인 자랑고(Charango), 삼뽀냐(Zamponna), 봄보(Bombo) 등을 통해 연주되는 에콰도르의 민족음악은 지하철 승객들의 발을 멈추게 하였고, 지하철 역 이동통로를 꽉꽉 매운 관객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뜨거운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관람객이었던 문주영(회사원, 27)씨는 이번이 두 번째로 관람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댄스음악이나 록이 아닌 색다른 에콰도르의 민족음악을 지하철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자 연주자 오른편에서 SISAY의 CD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악기를 판매하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같은 상업적인 판매 행위에 대해 공사의 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판매할 수 없는 것이지만, SISAY의 경우 관객들이 그들의 음반을 계속적으로 판매하기를 요구하고, SISAY가 상업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홍보의 차원에서 무료로 공연하는 것이므로, 공연 중에 판매하는 것이 아닌 이상 괜찮으며 상업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단속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지하철 예술무대의 공연 일정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지하철 매표소, 공연 팜플렛이나 서울지하철공사 인터넷 홈페이지(http:// www.seoulsubway.co.kr)를 통해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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