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의 사상을 통해 본 정신분석학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드가 비엔나 의과대학의 뷔르케 교수 밑에서 신경학을 연구하던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면 오히려 놀라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이 의학보다는 인문사회과학에서 더욱 그 세력을 떨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라깡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도 라깡을 인문과학 쪽에서 먼저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하는 사람쯤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 쉽다.

<과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제목은 영어권 분석가들을 위해 1990년 파리에서 열린 『세미나 제 11권 읽기: 라깡의 정신분석의 네가지 기본개념』에 나오는 논문 가운데 하나이다. 그 논문의 필자는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슨 대학의 핑크(Bruce Fink) 교수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이때의 과학이란 자연과학을 말하는데 자연과학에서는 욕망이 제외되어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어떤 목적과 목표와 욕망으로 이뤄져 있는 ‘과학적 소명’을 지닌 실행(pratique)이다. 사람들은 정신치료 과정의 평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설문지를 채우고 표준화된 검사를 시행하는 심리학을 ‘과학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정신분석학을 여론조사에 내맡기는 셈이다.

국제정신분석학회는 1963년에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자끄 라깡을 제명해 버렸다. 특히 제자들의 교육분석을 금하라는 명령이었다. 라깡의 분석방법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당시 국제학회에서 교육분석에 요구하는 기준은 452시간의 정신분석과 326시간의 지도감독이었다. 하지만 누가, 무슨 근거로 이런 시간을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과학이란 이름으로 그렇게 정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구실일뿐 분명히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누군가를 우리들의 학문영역에서 제외시키려면 그의 작업이 비과학적이라거나 과학적으로 무책임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라깡이 비로소 라깡답게 말하기 시작했다고 간주되는 좪정신분석의 네가지 기본개념좫의 첫 장에서부터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지, 정신분석학이 과학인지 묻고 있다. 그는 이 첫 장의 제목을 ‘파문’으로 정했다. 그러다보니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의 영역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런 의문부터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연구의 한 형태로 보고 있는데, 여기서 연구자(researcher)를 정의할 때 그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한다. 즉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띌 뿐이다.”

정신분석적인 해석은 해석학적 관점과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낸다고 라깡은 주장한다. 다시 말해, 정신분석의 실행에서 진실을 창조해낸다. 시니피앙을 넘어서는 실재계와 접촉함으로써 이 세계에 새로운 상징을 소개해준다. 바로 이 점이 종교로부터 또 해석학의 영향을 받은 인문과학으로부터 정신분석을 구별해준다. 라깡도 젊은 시절에는 프로이드처럼 심리적 결정론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라깡은 구조주의 언어학이라든가 구조주의 인류학 같은 신학문을 접할 수 있는 행운아였다.

그가 1964년에 쓴 논문인 좪무의식의 위치좫에서 정신분석학을 ‘추측과학’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여 주체성을 순수한 위치개념으로 환원시킬 수 있게 된다. 또다시 라깡은 1년 뒤에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더 이상 정신분석가들을 순수과학이든 인문과학이든 과학이라는 기치 아래 모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현대과학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정신분석의 이론과 실행은 가능하지 못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현대과학이 정신분석학의 발전에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로는 정신분석학이 과학적 담론의 부산물인 셈인데 그 자체로서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도 라깡은 정신분석학에게 과학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대수의 상징을 사용하는데 그의 친구였던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에 과학적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 의사(擬似)수학 공식을 사용한 것과 비슷한 셈이다. 몇가지 예를 들면, A는 대타자이고 S는 빗금친 주체이며 S(A)는 “대타자에서 결여의 시니피앙”이다. ‘타대상’이라 번역해 사용하는 objet petit a도 대수의 상징이다. 사실 라깡은 정신분석 이론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런 작업을 펴나갔는데 직관적인 이해는 상징계로의 접근을 가로막는 상상적 유혹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라깡은 욕망의 그래프에서 두가지 수학소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환상의 수학소(S◇a)는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를 가리키기 때문에 정신분석 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의 대상은 바로 주체에게 욕망을 일으키는 타대상이다. 라깡은 원인으로서의 이러한 타대상을 과학에 소개함으로써 과학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종주
(반포신경정신과 의원/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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