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철학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연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물론 자연과학의 핵심 테마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자연과학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데, 가령 오늘날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환경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깊은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자연을 하나의 거대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과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로 보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계론적 자연관은 16세기 이후의 과학혁명과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의 결합에서 유래한다. 과학혁명의 과정은 자연을 보는 관점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는데, 자연은 신의 의도에 따라 설계되고 신의 행동과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이 포기되었다. 대신 자연은 시계 태엽처럼 지극히 단순한 기계적 힘에 의해 작동되는 정교하게 구성된 자동기계와 같고, 이 기계의 작동과정은 수학과 실험을 통해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그 결과는 예측될 수 있으며, 한발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조절 또는 조작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데카르트적인 합리적 전통을 통해 한층 강화된다. 즉 인간과 자연은 별개의 실체이고, 인간 안에서도 ‘나’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아 또는 영혼(정신)은 육체(물질)와 구분되며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은 자연의 다른 모든 물질적 존재자들에 비해 우월하고 자유로운 위치에 있으며, 자연의 어떤 기계적인 법칙에 의해서도 지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이다. 한편 자연은 크기나 모양과 같은 연장적 성질을 지닌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상호 작용하는 어떤 보편적인 기계적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결국 자연은 마치 어떤 내재적인 기계적 힘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조절 장치와 흡사하다.

한편 유기체적 자연관은 자연을 기계 대신 하나의 생명체와 유사한 것으로 본다. 이는 19세기 낭만주의적 전통 및 생물과학(가령 다윈이론, 생태학 등)의 발달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낭만주의적 전통은 어떤 하나의 보편적인 원리나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기보다는 개별자들의 다양성과 상이함을 추구하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이는 생명체 각각의 존재성과 상대적인 자율성을 승인하는 유기체적 자연관을 지지해 준다. 여기에 생태학의 발전은 자연을 구성하는 (인간을 포함한) 이러한 생명체들 사이에, 생명체와 무생명체 사이에, 나아가 이들과 물리·화학적 환경사이에 유기적인 상호 의존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가운데에서 하나의 고리라도 위협을 받게 되면 그 영향이 유기체 전체로 확산됨을 말해 주고 있다. 인간 역시 유기체적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인간의 행위 또한 유기체적 질서를 깨뜨리지 않도록 행해져야 한다.

어떤 관점이 실재하는 자연을 더 잘 그려내고 있는가에 대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옳은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자연관과 관련하여 의미있는 화두가 있다면, 자연 안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혹은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일 것이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에 따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위적 가치는 달라질 것이며, 인간의 삶 자체 또한 근원적으로 재정립될 것이다.

이중원 교수
(철학/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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