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는 ‘디지털 신경망 비즈니스’를 부제로 한 “생각의 속도”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디지털을 사람의 모세혈관이나 신경망처럼 전역에 퍼뜨려 의사결정이나 실행의 속도를 최소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올 학교와 병원, 정부의 색다른 변신을 예측한 빌게이츠는 여전히 정보의 아웃사이더에 있는 주변인들에게 하루 속히 자신의 대열에 들어오도록 요구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MS 사업전략의 하나로 고객을 늘리고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눈가림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보면 실제로 그렇다 할지라도 그냥 보아넘길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빨리빨리 증후군”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마저도 “더 빨리’를 외치고 있다. 조기 유학, 초등학교 영어 수업, 자주 바꾸는 핸드폰 단말기 등 속도는 끊임없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러나 빠른 속도가 주는 편안함이나 편리함과 함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고는 갖가지 허점을 노출한다.
최근에 나온 좪느림의 지혜좫에서는 속도의 조화를 강조한다. 광속도에 놀란 사람들이 노자 등 동양의 무위철학으로 복귀하려는 반동과는 다르다. 좪느림의 지혜좫는 빨른 것은 빠르게, 느린 것은 천천히 훑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컴퓨터 디자이너가 제안한 대니얼 힐리스의 발상인 시계에서 글은 시작한다. 이 시계는 한 번 똑딱이는 데 1년, 괘종을 울리는데 100년, 뻐꾸기가 튀어나오는 데 1000년이 걸린다.
인류의 역사는 시간 앞에서 아주 짧다. 그렇기에 순간순간으로 만들어진 역사를 조금만 더 넓게 보면 오히려 시간을 지배하는 너그러움을 갖게 된다. 브랜드는 이 책을 통해 ‘당신에게 지금과 이곳은 어느 정도의 범위인가’를 물어 온다. 지금은 보통 1주일, 이 곳은 자신의 가정 정도를 가리킨다. 이것을 확장하여 30년의 ‘지금’과 이웃을 포함한 ‘이웃’을 그릴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사고의 틀이 만들어 질 것이라는 것. 그는 이를 빅 히어(Big here)와 롱 나우(Long Now)라고 한다.
속도의 조절은 어디에서나 필요하다. 속도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디지털의 편리함과 함께 과거의 것을 파괴하는 ‘파괴성’도 같이 봐야 한다. 그것은 시간을 단순히 늦추는 것이 아니라 확장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다.
박준규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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