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 큰 이야기 - 남대문중학교 교사를 만나

비가 온다던 하늘은 뿌옇게 이른 여름볕을 흩뿌리고 있었다. 하얀 반팔 교복으로 각인된 남자 아이들이 재잘 거리며 골목을 가득 메우면서 지나갔다. 이리저리 비집으며 교문을 통과했다. 방과후라서 그런지 축구하는 무리와 청소하는 부류가 편을 가르듯 나뉘어 있었고 교문 앞이나 구멍가게에선 잡스런 놀이에 교복들이 흥청대고 있었다.

교무실이란 권위와 기피의 문을 열었다. 교사들의 모습들도 갖가지. 제비같은 학생들의 소리가 잠잠해지고 약속했던 대로 국어와 사회과목 교사가 들어왔다. 작년 3월에 처음 부임한 송선영 씨(사회)와 9월에 온 한경애씨(국어). 지식과 권위와 존경의 상징이었던 일선 교사를 눈 앞에 두니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교사들은 예전에 내가 대하던 그 선생님과는 달리 보이는 것은 단순히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사의 그림자마저 성역화했던 과거의 윤리적 강요에 대한 연민은 더더욱 아니다. ‘교실붕괴’로 대변되는 현재 교육현장의 비참함이 각종 매스컴으로 너무 뚜렷이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답은 있으되 허망하거나 이상적으로 보여 오히려 현실을 더 비참하게 그리는 우리네의 교육계를 잘 알고 있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학교는 정말 붕괴하고 있는가? “전체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작은 것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는 문제죠.” 두 교사는 모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1학년이라서 좀 덜 해요. 그런데 2학년부터는 나쁜 것들이 삽시간에 번지죠.” 남학교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분위기에 휩쓸리고 교사에게 대드는 것을 남성다움으로 곡해하고 있다고 한다. 남성다움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선생님에게 대드는 거라든가 뭐......음담패설도 많구요” 학생들이 교사를 정면에 두고 음담패설이나 감정 표시를 쉽게 한다는 것이다. 교사를 교사로 보지 않는다면 이것은 교실붕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그렇지 않냐’고 반문해 봤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교육현장이 위험수위를 넘긴 했지만 원인은 학생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에 전혀 반영될 수 없는 정책들이 위에서부터 내리꽂히고 몇 달 안에 성과를 가져오라고 닦달하고 월급은 쥐꼬리만한데다 교사들의 의견이 반영될 공간은 전무합니다.” 봇물이 터졌다. “미디어에 그려지는 교사의 상은 사회의 실패자나 소시민적인 약자로 그려지고 사회적인 인식이 매우 낮아져 학생들마저도 교사 알기를 우습게 압니다.” 구조적인 문제다. “학교운영위원회도 속빈강정입니다. 학생들을 올바로 가르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아요.” 학교의 붕괴는 국가의 교육정책에 있다는 결론이다. 결국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인 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교육현장의 재활은 어렵다는 것.

“교사들의 지위를 올려줘야 해요” 교사가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처우개선이나 교육여건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젊은 교사들이 나름대로 전인교육을 하려고 하는 데 이것을 국가는 더 이상 막지 말아야 합니다. 전교조만 일찍 허용했어도 이렇게까진 오지 않았을 거예요.” 소장파 교사들의 움직임이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라는 것. “애들은 역시 애들이죠. 지속적인 지도와 관심을 가지면 변화됩니다.”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삭발하고 노력해도 귀를 닫고 있는 교육부에 대한 아우성으로 들렸다.
학생들이 귀가한 교정은 한가했다.

오후 4시 반이 넘은 시각, 교사들도 뿔뿔이 제 길로 퇴근했다. 한데 모여있는 학생들은 교사들이 지나가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교사들도 그들에게 굳이 인사를 받는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일 것이다. 서로가 지쳐 보였다.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만한 교사가 되리라는 뜻은 이미 버렸어요.” “전 원래 아이들에게 많은 간섭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먹구름 속에서 등을 돌린 교사와 학생과 교육계의 반목을 읽게 했다. 교사들의 지침이 반목으로 이어져 오히려 교사들마저 학생들을 우습게 여기는 극단으로 갈까 두려웠다. 언뜻언뜻 비친 ‘나도 할 만큼 했지만 이젠 지쳤다’는 표정이 부인하고 싶을 정도로 강했다. 젊은 교사들의 실망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만한 희망은 ‘아이들’ 밖에 없다. 제각각 가는 듯한 삼인사각이 그려지면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시리도록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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