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 한총련 출범식은 어떠한 폭력사태도 없이 평화적으로 개최되었다. 96년 연세대사태 이후 경찰과의 마찰과 원천봉쇄가 악몽처럼 뒤따랐던 여느 때와 달리 이번 출범식은 ‘승리자의 축제의 장’이라는 기치에 걸맞게 가히 축제적 분위기에서 연출되었다.

부산대에 도착하는 각 단위마다 대열을 이루어 ‘한총련 진군가’를 부르며 출범식장에 입성했다. 전야제 때 내린 비는 행사 진행의 장애가 아닌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무시키는 역할을 했다. 같은 색의 비옷을 맞추어 입은 각 단위 학생들은 민중가요와 문예선동을 함께하며 하나가 되어갔다. 본대회가 열리는 27일에도 부산대의 교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각종 박람회를 관람하기도 했다. 한총련 출범식 기간 중 빈번히 드나든 중국집 배달부의 모습에서 참가자들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밤새 내린 폭우, 박스 위에 신문지를 덮고 자는 악조건 속에서도 1만 3천여명의 학생들이 12시간이 넘는 출범식 자리를 지킬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부산경남지역 80여개 사회단체들이 앞장서서 출범식의 평화적 개최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평화적 여론형성을 주도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한총련이 언론의 보도대로 단지 폭력적인 이적단체였다면 지금쯤은 그 지지기반이 모두 없어져야 했다. 그러나 한총련은 아직 살아있다. 출범식에서 만난 학생들은 언론에 보도되던 과격한 폭력학생들이 아니었다.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면 여느 학생들과 다름 없이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자기가 속한 대학의 학과학생회의 일원으로 출범식에 참가한 것이다.

출범식동안에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연방제통일’과 ‘주한미군철수’이다. 연방제통일안은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의 내용과 비슷하다. 이같이 북한의 사상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에 97년 한총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그 근거가 무엇이든 간에 ‘이적’이라는 용어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남북정상회담이 바쁘게 준비되고 있는 지금, 북한은 우리의 대화상대이지 결코 ‘적’은 아니다. 북한이 ‘적’이라면 북에 비료를 보내고 쌀을 보내는 정부의 행동 또한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한 남북한의 화해무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이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매향리 미공군 쿠니 사격장,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 등으로 인한 ‘주한미군 철수’의 대중적 공감대 형성. 한총련은 지금 ‘이적’ 단체라는 오명을 씻고 대중적 기반을 갖춘 학생운동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 한총련이 대중 속에 함께하기를 노력하는 만큼 우리들도 편견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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