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문화체험- 해외 교환학생의 일본 이야기

일본에서 돌아온지 이제 5개월이 되었다. 마치 일본에서 꽤 오래 살다온 듯한 투지만 사실 내가 일본에 체류했던 기간은 1년이다. 하지만 일년동안 일본에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이 내 일생에서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내가 아닌 이상 동감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일본에 가기 전 일본은 경제대국에다가 만화영화에서 느낄 수 있듯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곳, 그야말로 환상 속의 나라였다. 그렇지만 공항에서 나와 전철을 타서도 일본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마을 정도였다. 동경시내로 들어갈수록 촘촘히 들어서 있는 주택들은 아담했지만 간결하고 단단해 보였다. 흥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기숙사의 텅 빈방에 도착하자 외로움이 밀려오면서 교환 유학생이라는 환상에 젖어 속단한 것이 아닌지 두렵기도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방안에 있는 전화 사용에서부터 시청에 신고하고 은행계좌를 만드는 일을 물어물어 해결해야 했다. 학교까지 가는 교통편 이용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철의 종류가 특급, 급행, 준급, 보통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잘 몰라서 목적지를 지나쳐 버린 일도 있고, 버스를 잘못 탈 때도 있었다. 늘 긴장해서 피곤했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황하는 일이 생겨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 때까지 참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던 곳은 동경학예대학교라는 사범대학이다. 그 곳에서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일본어와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어학에 자신이 생기고는 일본 학부생이 듣는 역사관련 수업을 수강하기도 했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내게 있어서 일본인이 그들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공부하고 있고, 또 우리 역사와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학예대학교는 학생들의 분위기나 학교규모가 우리학교와 매우 비슷하다.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수수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에 비하면 매우 자유로운 편이며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하다. 영어와 취직 걱정으로 여유롭지 못한 우리와 달리, 일본 학생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사실 그들은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어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을 매우 부러워하지만, 영어 이외에도 좋아하는 분야나 특별한 재주가 꼭 하나씩은 있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다. 또 아르바이트 자리가 꽤 많고 보수도 좋은 편이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도 쉽다.

일본 학생들은 개성이 매우 뚜렷하다. 그러나 아주 친하지 않으면 그런 뚜렷한 개성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성향도 누구에게서나 찾을 수 있다. 교환학생은 특별한 소속이 없어서 자유롭게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분야의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었다. 특별한 날에 술이 빠질 수 없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술자리에서의 분위기는 한국 학생들의 여느 때의 술자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마음을 터놓고 편한 대화가 이루어져서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래서 아침에 정문으로 들어오는 자전거부대가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일본에서 자전거를 주차시켜 놓은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자전거를 타지 못하면 불편한 경우가 많다. 교통비가 매우 비싼 이유도 있고, 우리처럼 집 근처에 가게가 있지 않고 대형 슈퍼가 띄엄띄엄 있는 형편이어서 집 밖에 나갈 때는 자전거로 다니는 일이 보통이다. 내가 살던 기숙사는 학교에서 전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데, 동경이라고는 하지만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용하고 작은 하천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깨끗한 곳이다. 처음 하천을 지나갈 때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도심지에 있는 하천 중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깨끗한 곳이 있을까? 사람들은 하천을 따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운동도 하고, 아이들은 다리 위에서 물고기나 오리에게 과자를 던져주기도 한다. 정말 부러운 모습들이다.

빠듯한 생활비를 가지고 생활하면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일본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녀보려고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쿄토다. 쿄토는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아직도 둘러보고 싶은 곳이 많이 남아 있다. 일본 여행을 원하는 친구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일본의 고대 도시를 걷는 듯한 돌로 된 바닥, 지도에도 잘 나와 있지 않은 많은 아름다운 사원과 절, 어디에나 있는 맛있는 먹거리들. 쿄토가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지도 한 장, 카메라, 가끔씩 들여다볼 안내 책만 있으면 며칠이든 즐거울 수 있는 곳이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는 않았다. 계획 없이 출발했던 첫 쿄토 여행에서 난 한 달치 생활비를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다녀와서는 집에서 보내준 라면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까지도 추억으로 오래 남는다.

국사 97 홍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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