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미리보기

서기 2000년, 세기말의 두려움을 말끔히 씻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찾을 즈음 그렇게 소리도 없이 북한은 우리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또한 영화도 있다. 비록 우리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북한영화 1호인 <불가사리>가 최근 자본주의의 논리와 타협하지 못한 채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 불운을 겪었지만 말이다.

북한에 있어서 영화란 인민들의 사상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필요한 중요한 선전선동수단이다. 또한 1973년 4월 11일 발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화예술론』은 현재까지도 북한 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일에 의해 주도된 북한의 영화는 1980년대에 들어 큰 변화의 모습을 보이는데, 1987년 창설된 ‘비동맹 및 개발도상국 영화축전’ 제1차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횃불 금상과 여자연기상(오미란)을 받은 예술영화 ‘도라지꽃’은 북한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새삼스레 여성을 화두로 삼는다는 것이 어쩌면 시대 착오적 발상일지는 모르지만 1987년에 제작된 <도라지꽃>은 90년대 후반을 풍미하던 우리네의 멜로 영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아마도 그 당시 북한의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인 ‘이농현상’을 멜로 드라마의 틀에 맞춘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고향을 저버리고 떠난 원봉은 27년 만에 아들과 함께 고향을 찾고 고향어귀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원봉은 애인 송림과 고향을 가꾸다 송림을 버리고 자신만 도시로 향하게 된다. 송림은 도시를 찾아 사랑마저 버리고 떠난 원봉을 애써 잊으며 고향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중 산사태로 목숨을 잃게 되고 그의 동생이 언니의 뒤를 이어간다. 도시를 동경하며 고향을 떠났던 원봉은 후회하며 자신의 아들을 고향에 정착시키려하고, 이를 안 송림의 동생은 결국 원봉을 용서하고 그의 아들을 받아들인다.

<도라지꽃>에는 여성이 등장한다. 흔히 등장하는 객체적인 여성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 말이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접속>, <약속>, <편지> 등의 영화들에 나타난 여성들은 남성의 권력에 휘둘린 가엾은 아낙네들(혹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이라면, <도라지 꽃>에 송림은 자신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길을 걸을 줄 아는 여성인 것이다.

물론 <도라지꽃>도 1973년 4월 11일에 완성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화예술론』에 기초하였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점도 많다.

과다한 영화음악의 사용, 잦은 줌-인, 줌-아웃 그리고 70년대 우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배우들의 움직임과 발성 등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 형식의 차이가 주는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들의 문화가 저속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문화 속에서 탄생한 하나의 표현 양식이기 때문이다.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94 김영석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