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현대적 가치

‘한국불교’라고 부르는 우리 나라의 불교전통은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오랜 전통 속에서 불변하는 본질적 특성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불교의 지난 역사를 연구해온 학자들은 엄밀한 시공간적 보편성이 아니라 개연적, 특정적이라는 관점에서 한국불교의 특징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기복적이라거나, 국가주의적이라거나, 회통적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오랜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가치있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수행’과 ‘포용’의 전통이 그것이 아닐까.

‘수행’은 불교의 가장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 세상을 초월하는 절대타자가 있고 그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타력적인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수행을 통하여 모든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불교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다양한 양태의 불교가 등장하였지만, 궁극적인 구원은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근본적 입장은 결코 바뀌거나 부정되지 않았다. 만일 그것이 부정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불교가 아니다.

불교가 우리 나라에 전래된 이후 수행전통은 한국불교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가적 탄압이 혹심하였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불교가 단순한 민간신앙으로 전락하거나 퇴락하여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걸고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전통 때문일 것이다. 한때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불교가 오늘날 관광불교나 유물불교, 또는 죽은 이들의 명복만을 비는 장례불교로만 남아있음에 반해 한국불교만은 살아있는 전통으로 우뚝 서 있다. 이 역시 수행의 맥 덕택이다.

오늘날 수행은 출가자들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부처가 되기 위한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욕망의 그늘에 가려진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진정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의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욕망에 끌리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수행의 필요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여름철이면 3박4일이나 일주일 정도의 수행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이에 참가하고자 하는 이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은 수행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한국불교가 잘 지켜온 수행전통은 그만큼 더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한국불교의 고귀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다른 전통에 대한 ‘포용’이다. 우리 나라에서 불교와 타전통의 관계가 본격적인 문제로 제기된 것은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조선을 건국한 유교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데 가장 큰 장애를 불교라고 보았기 때문에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들을 노골적으로 시행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교를 비롯한 다른 전통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정립한 사람이 함허당 득통 기화이다. 그는 불교가 궁극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가장 우월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유교와 도교 등의 다른 전통 역시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근본적으로는 같은 진리를 공유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낮은 수준의 진리를 설하는 가르침으로 규정하여 불교의 하위체계에 편입시킴으로써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종교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종교와 종교인들이 있다. 그리고 일부 배타적이고 광신적인 종교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타종교의 신앙대상들과 종교시설들에 대한 파괴행위는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포용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가 가장 우월하고 궁극적이라는 생각은 어느 종교인에게나 같다. 그러나 그 우월성은 배타성으로 이어져서는 안되며, 열등한 다른 전통들을 포용할 수 있는 폭넓은 관용의 정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제각기 다른 전통을 견지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

한국불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밖에도 많은 가치 있는 고귀한 가르침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행’과 ‘포용’의 전통은 불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이게 가장 절실한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해당
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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