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의 사각지대를 가다

‘부패재단 우리가 막는다’, ‘상○○ 이△△는 물러가라’ 붉은 글씨의 현수막이 걸려있고, 교실에 책상과 같이 있어야 할 의자가 학교 건물 앞 천막에 갖가지 구호가 적혀진 피켓들과 함께 있다. 비리재단에 대한 호소 어린 글귀가 적힌 대자보가 곳곳에 붙여져 있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하고 있는 상문고등학교를 들어서면서 보이는 풍경이다. 개학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고, 건물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상문고는 지금 개학과 동시에 1·2학년 학생들이 늦은 1학기 기말말고사를 보고 있다.

“시험이요? 마지못해 보는거죠. 학교가 아무리 아수라장이라도 교육부의 행정은 따라가야 하니까요. 시험을 안 보면 우리만 손해잖아요? 등록금도 지금은 납부거부운동을 하고 있지만 나중엔 낼 수밖에 없겠죠. 지금 우리의 관심은 시험보다는 이사진에 대한 항소 결과에요.” 상문고 재학생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서 만난 이종대(2학년)군의 말은 아직은 학교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사회와 정면으로 맞서게 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비대위는 교장실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이사실을 점거하고 사무실을 꾸렸다. “비대위를 구성할 때 2백장이 넘는 원서가 들어왔어요. 전교생이 부패척결운동에 동참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 대표성이 필요해서 20명 정도로 집행부를 구성했지요. 선생님들과 학부모, 동문 선배들은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상대위(상문고 정상화를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어요”

상문고의 교무실 풍경도 이색적이다. 교무회의와 학사일정이 적혀있어야 할 칠판에는 상대위 회의 일정, 재판일자, 교무부 앞 시위 경과 등이 적혀 있었고, 벽면에는 ‘투쟁, 쟁취, 척결...’ 등의 글자가 즐비하다. 교무실, 특별활동실 등 학교 전체가 부패재단과 전쟁을 하고 있는 하나의 요새 같았다.

“난 운동권은 아닌데 이번 사태 지켜만 보려니 너무 답답하더군. 알면 알수록 교육부니 사법부니 이해 못할 행동만 하고, 그래서 전교조에 새로 가입했어.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선생님도 몇 분 계시고...” 한 교사가 지나가며 넌지시 말을 건냈다. 상문고는 현재 97명의 전체 교사 중 57명이 전교조에 가입되어 이번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상대위는 이미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정기적인 회의를 하고 있으며 3차까지 진행된 교육부 앞 시위를 평가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번 사태의 최대의 피해자는 안정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잃고 있는 학생들이에요. 수능이 임박한 고3 학생들이 가장 걱정되지요. 환자의 신뢰를 잃은 의사들의 파업이 그들의 정당한 요구조차도 이기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듯이 이번 일의 수습이 너무 늦어진다면 교사들도 학생과 학부모에게 외면 받을 수 있어요. 비리재단으로부터 교권과 수업권을 지키기 위한 이번 싸움이 명분 없는 것이 되지 않아야겠죠”라는 교사 최인환씨의 말은 사건의 조속한 해결이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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