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재단 무엇이 문제인가

상문고등학교가 서울시교육청, 사법부, 비리재단과 맞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94년 3월, 학부모들이 낸 찬조금과 보충수업비 17억여원을 유용하고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되었던 교장(상춘식)이 이번에는 자신의 부인을 이사진으로 하여 학교에의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94년 사건 이후 상문고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시교육청의 판단으로 관선이사(임시이사)가 파견되었다. 6년 동안 관선이사체제로 평화롭게 운영되던 상문고에 상춘식의 부인 이우자씨가 횡령금 변제 등을 명시한 학교 정상화 계획서를 제출했고, 학생과 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교육청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파란이 일게 되었다. 교사와 학생들은 이번 일을 사실상 상씨의 복귀로 받아들여 교육청 점거 농성을 하는 등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국회 교육위원회도 교육청의 조치를 비판하고 나서자 교육청은 올 2월초에 이사진 승인을 취소하고 다시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이씨 등은 교육청의 조치에 반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뜻밖에도 6월 29일 법원은 재판에서 이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문고 측은 당장 항소를 신청했고 학생들의 시험거부, 등록금납부거부, 삭발 등으로 학사 일정이 마비되어 지난 달 15일 조기 방학에 들어갔다. 방학동안에도 상문고 교사와 학부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상대위(상문고 정상화를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는 항소심에 대비한 준비를 했고, 교사 몇몇은 상문고 사태를 알리고 정상화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국토종단마라톤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달 21일, 1학기에 치르지 못했던 기말고사와 함께 2학기가 시작되었다. 오는 30일에는 항소심의 결과가 나오기로 예정되어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학자금횡령, 재단의 교권침해 등 사학재단의 비리는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립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문제가 표면상으로 나타나도 사법적 처벌로 인해 뚜렷한 판례를 남긴 적이 없고, 징계를 받은 재단 임원들도 현행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2년 후에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어 또다시 비리가 자행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상문고의 한 관계자는 “1심에서 부패재단의 손을 들어준 사법부 측의 근거대로라면, 2심 역시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자신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립학교법의 개정이라고 주장했다. 사립학교법 제20조 2항에 따르면, 교육부의 임원승인취소 요건이 ‘임원간의 분쟁, 회계 부정 및 현저한 부당 행위’로 나와있다. 이 중 ‘현저한 부당 행위’에 대한 판단이 너무 애매한 것이 문제가 된다. 또한 같은 법 제25조에는 관선이사의 임기를 2년으로 한하고 1회에 한하여 그 연임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립학교법을 따른다면 학교 구성원들의 힘으로 부패·비리재단을 학교 밖으로 몰아냈다 할지라도, 짧으면 2년 길면 4년마다 그들이 다시 교문을 기웃거리게 하는 구실을 만들어 줄 수밖에 없다. 이번 상문고 사태처럼 교육청에서 어떠한 근거에서건 일단 부패재단을 학교의 임원으로 승인한다면 ‘현저한 부당 행위’에 대해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임원승인취소도 할 수 없다.

상문고 교사 최인환씨는 “2심에서 진다면 3심까지 갈 생각이다. 그러나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승소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는 않는다. 2심 결과가 나오고 나면, 소송은 소송대로 진행하면서 교육부에 임원승인철회 재처분과 새로운 관선이사부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할 예정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부패재단은 교사와 학생의 힘으로 교문에 발을 들이진 못할 것이다”라고 상대위측의 입장을 밝혔다.

한서고등학교, 서울미술고등학교에서도 재단비리를 개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상문고의 결과를 주시하고 있는데 이번 상문고 사태가 지지부진하게 끝나고 만다면 앞으로의 사학개혁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 중·고등학교의 절반 이상이 사립학교인 현실에서 사학개혁이 곧 교육개혁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임을 숙지한다면 이번 상문고 사태는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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