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을 필두로 한반도는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경의선 철도 복원작업이 이루어진다는 발표에서부터 역사적인 남북이산가족상봉에 이르기까지 냉전의 한파 속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기적처럼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문제에 관한 한 많은 국민들이 마음의 여유와 타방에 대한 관대함을 얻게 된 것도 나름의 성과라 할 만하다. 남한을 방문했던 북의 이산가족이 북의 지도자에 대한 찬사를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늘어놓았을 때도, 남한의 국민들은 이해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려 했다. 북한과 같은 유일지도체제가 용납되기 힘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북한 동포들이 보여주는 획일화된 정치적 수사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을 법한데도 남한의 국민들은 이질감에 움츠려들기보다 동포애적 포용으로 냉전의 역사를 감싸안았다.

50년 동안 고착화되었던 대결의 구도가 불과 50일만에 화합의 구도로 선회한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결단에 힘입은 바 크지만 그 저변에는 통일을 열망하는 남북 민중들의 소망과 의지가 자리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통일문제에 관한 한 냉철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환기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념과 현실의 영역을 초월하는 민족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의 구성원들이 통일을 기획하고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지난 50년간 한민족은 통일을 준비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자칫 정서와 감정의 영역으로 국한되어 분출되기만을 기다려 왔을 전민족의 통일 의지를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킬 만한 제도와 정책과 사업들을 하나 둘씩 마련해 가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화합의 물꼬를 남북의 지도자들이 텄다면 그것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남과 북의 국민들 모두가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남북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통치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분단구조를 이용했던 역사를 상기할 때, 미약하더라도 꺾이지 않는 화합의 다리를 떠받칠 만한 존재는 역시 다수 국민들이다. 즉 남북의 국민들 각자가 스스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걸맞는 다양한 통일사업들을 마련하고 당국은 여론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 그 사업들을 승인하고 도와줌으로써 통일의 씨줄과 날줄이 얽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지리적인 통합만을 통일의 구체적인 상으로 간주하고 이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경주하는 결과위주의 통일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통일지향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상의 통일에 더 많은 가치를 둠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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